【오산인터넷뉴스】하주성 기자 = 설악산, 난 이곳은 인간이 디딜 곳이 아니란 생각을 한다. 가을이 되면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 바로 설악의 만추를 만나고 싶다. 속초에서 3년 정도를 머무는 동안 수도 없이 발걸음을 했던 곳이지만, 내가 본 것은 그 광활한 설악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설악산은 수많은 비경을 숨기고 있는 곳이다. 난 설악산을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다.
▲ 금강굴에서 바라본 천불동
‘새색시가 몸 전체를 장옷으로 감추고, 겨우 눈만 뭇 남성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곳’ 같다고. 그만큼 설악산은 우리에게 많은 곳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그래도 감출 곳은 다 감추고 있는 곳하다. 설악산에 8기가 있는 것도 그만큼 이곳은 감추고 있는 곳이 많다가 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명명한 것이나 아닐까?
설악산의 기이한 현상이라는 8기(八奇)
설악산에는 팔기팔경이 있다. 여덟 가지의 기이함과, 여덟 가지의 절경이 있다는 소리이다. 그 중 팔기는 첫째 천후지동(天候地動)이라고 하여서 여름철이면 비가 많이 내려 뇌성벽력이 칠 때, 땅이 갈라지고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를 꼽았다. 두 번째는 기암동석(奇巖動石)으로 흔들바위와 같이 흔들리는 괴이한 돌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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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표 |
▲ 설악 계곡
세 번째는 백두구혈(百斗九穴)이라고 했다. 인제군 북면 용대리 외가평에서 백담사로 가는 길목의 백담계곡에 하식작용에 의한 구휼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네 번째는 전석동혈(轉石洞穴)로 외설악의 계조암은 대표적인 전석동혈이다. 바위와 바위가 서로 맞대 생긴 굴을 말한다. 다섯 번째는 수직절리(垂稙節理)로 암질과 구조의 차이에 의해 차별침식으로 생겨난 내설악의 하늘벽, 외설악의 천불동처럼 절리현상에 의해 생겨난 천태만상의 형상을 말한다.
여섯 번째는 유다탕폭(有多湯瀑)이다. 12선녀탕과 같이 쏟아지는 물로 인해 바위가 패여 마치 탕처럼 생긴 것을 말한다. 일곱 번째는 금강유혈(金剛有穴)로 비로봉의 금강굴과 같이 큰 석산에 바위가 생긴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여덟 번째는 동계설경(冬季雪景)으로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
려 11월부터 이듬해 음 3월이 지나도록 백설이 만연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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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암괴석이 많은 설악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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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선대 |
주변조차 둘러보기 버거운 설악산
시간이 꽤 흘렀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 설악산 입구에 있는 신흥사를 지나 천천히 산길로 접어든다. 길옆에 선 이정표를 보니 비선대 2.5km, 금강굴 3.1km라고 적혀있다. 그저 흰고무신을 신고 나들이 겸 금강굴을 오르고 싶었을 뿐이다. 바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주변 경관을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는 길이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숲길을 걷고 있다. 아마 이 너른 설악의 어디를 찾아가는 것이겠지? 설악에서는 궁금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그저 다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를 들어 궁금증을 갖는다면, 어디 한 곳 돌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숲속 냄새가 짙다.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돌들이 삐죽 고개를 내민 길을 걷는다.
그렇게 걷다보면 비선대를 만난다. 커다란 암반에 누군가 커다랗게 비선대라고 음각을 해놓았다. 그리고 주변에는 잡다한 글들이 보인다. 비선대를 지나면 길이 갈라진다. 오른편 산길로 들어서면 금강굴로 가는 길이고, 왼편 숲길로 들어가면 천불동을 지나게 된다. 금강굴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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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산인 설악산은 보이는 곳마다 아름답다 |
▲ 금강굴로 오르는 철계단
원효대사님이 이곳에서 정진을?
금강굴은 신라의 원효스님이 이곳에서 정진을 했던 곳이라고 전한다, 왜 스님은 이곳 설악산 비로봉 아래 굴에서 정진을 하셨을까? 금강굴이라는 명칭도 원효스님의 금강삼매경 중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금강굴은 외설악의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만날 수 있다는 곳이다.
길이 점점 가팔라진다. 이제는 뒷짐을 지고 여유를 부리기에는 버겁다. 새로 조성한 듯한 층계가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위로만 치솟는다. 계단을 오르니 다시 암벽에 겨우 달라붙은 수직계단이 나온다. 비로봉 수직절리에 매달린 듯한 철계단. 그 위에 원효스님이 정진하셨다는 금강굴이 있다.
원효스님은 저 곳을 어찌 오르셨을까? 그 때는 이런 구조물도 없었을 텐데. 설마 날아오르지는 않았을 테고. 위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올 수도 없
는 곳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철계단을 오른다.
▲ 수직으로 오르는 계단도 있다
금강굴에서 천불동을 바라보다
금강굴. 1300년 전 원효스님이 이곳에서 정진을 하셨다는 곳이다. 스님 한 분의 독경소리가 비로봉 벽을 타고 계곡으로 쏟아져 내린다. 그 계곡 밑에 바로 비선대가 보인다. 그리고 건너편에 천불동 솟은 바위들이 가득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던가?
죽 일렬로 선 것 같은 천개의 봉우리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는 천불동. 그 천불동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원효스님은 이곳을 어찌 아셨을까? 아무리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다고 하지만, 이 자리에서니 모르는 것 투성이란 생각이다. 이곳에서 천불동을 백날만 바라보고 있어도 무엇인가를 깨달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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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굴에서 예불을 올리는 스님 |
▲ 금강굴 안에서 밖을 내다보다
이른 아침 원효스님의 체취를 만나기 위해 오른 금강굴. 굴 입구에 서서 이곳이 왜 설악 8기 중 한 곳인가를 깨닫는다. 아마 스님도 이곳에서 그런 깨우침을 얻은 것은 아니었을까? 원효스님이 이곳에서 정진을 한 것도, 알고 보면 천불동에 서 계신 천분의 부처님 때문이었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