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hong 기자 2013-09-27 19:13:08
【오산인터넷뉴스】<독자기고> 고일영(닐스학원장·출판·문화·연극 기획자) = 「그래서 나는 경기도가 좋다」
“어, 선배는 회사 다니는 줄 알았는데?”
안성시립도서관으로 주부들에게 영어회화를 강의하러 간 첫날.
수강생으로 앉아 있는 후배를 만났다.
대학에서 함께 영어연극을 할 때 이 친구는 무대 안팎에서 소품을 챙기고 포스터도 붙이며 부지런하게 일을 잘 했었다.
“변화무쌍하네요.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는 줄 알았는데 슬그머니 무역회사에 입사하질 않나, 또 느닷없이 영어 선생님이 되질 않나…”
후배는 시외곽에서 화원을 운영한다고 한다.
생활에 쫓겨 책 한 번 거들떠 보지 못하다 마음을 먹고 공부하려는 차에 안내문을 보게 됐고, 강사를 소개하는데 나를 보고 적잖이 놀랬다고 한다.
사실 안성에서 몇 번 강의 요청을 받았지만 만만치 않은 거리 때문에 망설였다.
그러다 어느 토요일 남사당 공연을 보기 위해 만세고개를 막 내려가는데 굽이굽이 작은 시골길과 산과 들, 냇가가 흐르는 탁 트인 사방이 한 폭의 수채화였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도서관이라고 한다.
그래서 쾌히 강의를 시작했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아내 직장이 가까운 오산에 거처를 정했다.
처음엔 한 두 해 살다 서울로 재입성할 요량이었는데, 영어선생이 되는 바람에 그대로 눌러 앉았다.
다행히 수업은 ‘연극적이고 재미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인근 기업체, 도서관 등에서 강의를 요청해 왔다.
90년대말 무렵은 도서관 숫자도 미미 했지만 영어, 그것도 주부 대상 강좌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 각 지자체 마다 도서관이 하나 둘씩 늘자 〈화성 태안도서관〉을 필두로 수원 아래 지역 도서관, 여성회관, 문화센터 등에서 두루 강의를 하게 됐다.
보통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수업을 한다.
수강생 가운데 휠체어를 타고 2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한 분이 있는가 하면 ‘아이쇼핑’의 올바른 영어를 묻는 라디오 방송 퀴즈에서 ‘원도우 샤핑(window shopping)’이라고 말해 푸짐한 선물을 받은 분도 있다.
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어떤 분은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경기도 일대 박물관, 미술관 축제 등을 찾아 나서고 수업종료 10분전 수강생들에게 가져 온 축제 팜플렛을 보여줬다.
역동적인 경기도 모습을 이야기하고 다음 여행지도 귀띔했다.
나는 어쩌면 영어강사라기 보다 경기도 문화의 이모저모를 전하는‘경기문화메신저’에 가깝다.
요즘은 출판일로 시간적 여유가 없고 강의 요청도 뜸하다.
이따금 주말여행중에 강의했던 곳을 지나다 보면 열정으로 가득했던 당시 기억이 새롭다.
그 때는 수강생을 모으려고 무진 애를 써도 인원부족으로 개강이 어려운 적도 있었다.
요즘은 도서관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 서 접수를 시작하기 무섭게 정원이 찬다고 한다.
진실로 가슴 뿌듯한 소식이다.
강의 덕분에 경기남부는 실컷 구경했고, 경기북부지역은 주말여행으로 둘러 봤다.
경기도는 내게 물질적 풍요 뿐 아니라 정신적 만족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나는 경기도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