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언론협회(WPA) 이치수 회장(현 대한인터넷신문협회 회장 겸 전국언론단체총연합회(NFPO) 회장)은 3일, ‘트럼프주의 시대, 대한민국의 글로벌 신시장 주도전략 – 지경학의 역습, 한국은 언제까지 대응만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세계언론협회(WPA) 이치수 회장
이 회장은 이번 칼럼에서 트럼프주의의 재등장을 단순한 통상 정책 변화나 외교 노선의 전환이 아닌, 국제 질서 전반을 재편하는 구조적 전환의 신호로 규정했다. 그는 “트럼프주의는 분명 위기이지만, 동시에 대한민국에 전례 없는 전략적 공간을 제공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전제하며, 보호무역의 확산과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적 방향을 짚었다.
특히 이 회장은 “글로벌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로 기울수록, 중간 지점에서 신뢰 자본과 기술 역량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국가의 전략적 가치는 오히려 확대된다”며, 대한민국이 기존의 ‘반응 국가’를 넘어 글로벌 질서를 함께 설계하는 주도 국가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질서의 변두리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장과 협력 구조를 설계하는 중심축으로 도약할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위기를 주도적 번영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결정적 분기점”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단발성 제언이 아니라, 일련의 칼럼을 통해 단계적으로 제기돼 왔다. 3월 1일자 ‘강대국의 판단이 질서가 되는 암울한 시대’에서는 규범보다 힘의 판단이 우선하는 국제 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짚었고, 3월 2일자 ‘트럼프주의 시대, 대한민국 안보·외교 전략’에서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이 안보와 외교 전략을 어떻게 재설계해야 하는지를 분석했다. 이번 칼럼은 그 연장선에서, 산업과 기술을 매개로 대한민국이 글로벌 신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전략적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최근 국제 질서는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군사·안보 환경의 변화는 더 이상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와 산업, 기술 질서 전반으로 확산되며 각국의 정책 선택을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외교·안보와 통상·산업 정책을 분리해 접근하던 기존 정책 프레임은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국가 전략 전반에 대한 종합적 재검토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 국가나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중견국을 포함한 국제사회 전체가 직면한 구조적 환경 변화에 가깝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기술 기준 경쟁의 심화, 보호무역 기조의 확산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국은 단기적 이익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 중장기적 협력 가능성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경제와 산업은 글로벌 시장과 깊이 연결돼 있으며, 외교·안보 환경의 변화는 곧바로 산업 경쟁력과 국가 회복 탄력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변화의 원인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역할과 위치를 선택할 것인가에 있다.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이 확대될수록 각국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협력 파트너를 선호한다. 기술 역량, 제도적 신뢰, 정책 지속성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국가는 그 자체로 중요한 전략 자산이 된다. 이는 특정 이념이나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현실적 과제다.
다음은 3월 3일자 이치수 회장 칼럼 전문이다.
트럼프주의 시대, 대한민국의 글로벌 신시장 주도전략
지경학의 역습, 한국은 언제까지 대응만 할 것인가
지난 3월 초 중동에서 발생한 강대국 간 군사 충돌은 국제 질서가 더 이상 규범과 합의에 의해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충돌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었다. 군사적 긴장은 즉각 에너지 가격과 금융 시장을 흔들었고, 그 충격은 글로벌 산업과 투자 흐름 전반으로 확산됐다. 국제 질서는 이제 선언된 규칙이 아니라, 힘을 가진 국가의 선택에 의해 실시간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은 안보와 경제가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사력은 경제를 흔들고, 경제적 수단은 곧바로 안보 전략이 된다. 무역, 투자, 금융, 제재는 더 이상 중립적 정책 도구가 아니다. 국가의 정치·안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다. 이른바 ‘지경학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고,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됐다.
문제는 이러한 전환이 단기간의 정책 변화나 일시적 충격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 노선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통상·산업 기조는 자국 중심의 질서를 제도적으로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관세 강화, 산업 보조금 확대, 공급망 재구성은 더 이상 협상 국면에서의 전술이 아니다. 미국 국가 전략의 기본 전제에 가깝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이를 외부에서 발생한 환경 변화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트럼프주의는 일시적 변수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될 조건에 가깝다. 한국의 경제 전략은 이제 이 전제를 출발점으로 다시 설계돼야 한다.
공급망 전환,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주의 하의 미국은 동맹국조차 예외 없이 자국 산업 보호의 대상이자 수단으로 다룬다. 자유무역을 전제로 구축된 글로벌 분업 체계는 빠르게 해체되고 있고, 공급망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 정렬의 문제로 재편되고 있다. 어느 편에 서 있는지가, 얼마나 싸게 잘 만드는가보다 중요해진 시대다.
이 환경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분명하다. 특정 국가 중심의 가치사슬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단순한 수출 시장 다변화가 아니다. 미국을 대체하겠다는 발상도 아니다. 핵심은 공급망 전략 자체를 다극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다수의 전략 거점 국가들과 1대1 맞춤형 산업 협력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한국이 보유한 반도체, 이차전지, 통신, 에너지 전환 기술 등은 단순히 해외로 판매되는 상품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들 기술은 상대국의 산업 체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을 보완하고, 중장기 국가 전략의 핵심 요소로 편입될 수 있는 자원이다. 이를 개별 제품 단위가 아니라 산업 구조를 함께 설계하는 패키지형 협력 모델로 제시할 때, 한국은 대체 가능한 공급처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배제하기 어려운 협력 주체가 된다.
기술 주권 경쟁, 한국은 아직 주변부에 있다
글로벌 패권 경쟁의 본질은 생산량 경쟁이 아니다. 기술의 기준과 질서를 누가 정의하느냐의 문제다. 표준을 만드는 국가와 표준을 따르는 국가는 같은 제조 역량을 갖고 있어도 전혀 다른 위치에 서게 된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능력을 갖췄지만, 국제 기술 질서 형성 과정에서는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그 결과 한국은 ‘잘 만드는 나라’이지만, ‘질서를 설계하는 나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이 프레임을 깨지 못하면 한국의 산업 경쟁력은 언제든 대체 가능하다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 한국은 제품을 납품하는 국가가 아니라, 상대국의 산업 전환과 디지털·에너지 구조 개편을 함께 설계하는 국가로 역할을 바꿔야 한다.
여기서 한국이 가진 차별적 조건이 있다. 축적된 기술 역량 위에 장기간 형성된 신뢰, 그리고 국가 이미지가 함께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술은 거래를 성립시키지만, 신뢰는 협력을 지속시킨다. 이 두 요소가 결합될 때 한국을 축으로 한 산업 협력 관계는 외부 압박이나 정세 변화에도 쉽게 붕괴되지 않는 안정적 구조로 기능할 수 있다.
전략적 주도권은 준비된 국가에게 간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경제, 외교, 안보가 분리되지 않는 복합 경쟁 상태에 놓여 있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각국은 오히려 가장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파트너를 찾는다. 계약을 지키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기술과 산업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국가가 선택받는다. 한국은 이 조건에 가장 근접한 국가 중 하나다. 문제는 우리가 이 위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가다.
글로벌 신시장 주도 전략은 단순한 성장 전략이 아니다. 이는 외교적 공간을 확장하고, 국가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생존 전략이다. 지금 한국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강대국이 만든 규칙에 반응하며 대응만 하는 국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장과 협력 구조를 기획하고 주도하는 국가로 전환할 것인가.
트럼프주의는 위기이자 기회다
트럼프주의가 촉발한 보호무역과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분명 위기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에게는 전례 없는 전략적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각국이 자국 중심으로 고립될수록, 중간 지점에서 신뢰와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의 가치는 오히려 커진다.
한국은 이제 선언이 아니라 실행으로 답해야 한다. 개별 국가의 수요에 맞춘 산업 협력 모델을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상호 의존적 관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반도체와 AI 등 초격차 기술을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해 단순 거래를 넘어 구조적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가 쌓일수록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독보적 위치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질서의 중심축으로 도약할지 여부는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다. 위기를 기회로 치환하여 생존을 넘어 주도적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 그 결정적 기회가 바로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참고: 본 자료는 이미 공개된 칼럼을 국회 정책 판단 참고용으로 요약·정리한 공개자료입니다. 정파와 이념을 넘어, 향후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제·산업·안보 전략을 논의하는 데 있어 초당적 검토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