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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김지헌 기자 = 지난 9일 오산자원봉사센터에서 인권, 그리고 사람이라는 주제로 인권운동가 박래군씨의 강연이 펼쳐졌다. 박래군씨(‘인권재단 사람상임이사)는 우리 사회 약자들의 인권이 유린됐던 순간마다 그 자리를 지키던 인물이다.

 

▲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상임이사
 

그는 노태우 정권 때, “아직 광주는 살아있다. 군사 파쇼 타도하자의 구호를 외치고 숭실대 옥상에서 분신자살한 동생, 박래전씨의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수도 없이 했을 얘기였지만 그의 눈가는 붉어져 있었다.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운동과 용산 철거민 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그리고 세월호 416연대까지, 그가 겪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참혹한 현장을 설명하며, 인권이 왜 지켜져야 하는지를 얘기했다.

 

그는 골로 간다’, ‘골 때린다의 어원에 대해서 설명했다. 6.25 전쟁 당시, 국군이 지리산(산청군 외공리)에서 수백 명을 사살한 이야기에서 온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주민들 사이에서 골짜기로 끌려가면 죽는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실제로 구덩이에서 수 백구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국군이 자국민을 집단학살한 이유는, 일반 시민 중에 인민군이 숨어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약한 사람들은 사회에서 쫓겨나 격리되고 차별받는다. 장애인 시설도 그 중 하나이다.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와 비장애인과 함께 일상을 누려야한다.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그냥 사람이 사는 사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사회의 밑바닥을 들여다봐야 그 사회의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서 소수자에게 주목해야한다. 인권은 침해 받는 자가, 그것이 절실한 자가 목소리를 내야 찾을 수 있다며 두 시간의 강연을 끝냈다.

 

강연이 끝난 후, 객석에서 질문이 쏟아졌는데 그 중 한 여성이 일어났다.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저는 화성시 서신면 용두리 xx초등학교에서 래전이와 같이 공부한 사람입니다. 래전이는 시를 좋아하던 친구였죠. 어느 날, 우연히 강연 플랜카드를 봤는데 래전이 형이라고 직감했어요. 저는 나이를 먹어 이렇게 살아가는데 래전이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찾아왔습니다.” 라고 말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박래군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강연 초기에 붉어졌던 눈으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행사가 끝난 후, 그에게 다가가 궁금한 점을 물었다. (Q:기자, A:박래군 氏)

 

Q: "사람들의 괴로움, 살짝 눈을 감으면 편하실 텐데 이렇게 투쟁하시는 이유는?"

 

A: "광주 때문이죠. 그때 국가라는 집단의 폭력성을 봤습니다. 약자라는 이유로 시민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폭력 앞에 내던져지는 그 상황. 그런데 대한민국은 아직도 그렇습니다. 그걸 참을 수가 없어요."

 

Q: "모든 이의 인권을 말씀하시는데, 요즘같이 흉흉한 범죄 그러니까 흉악한 범죄를 넘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범죄자들의 인권은 왜 지켜져야 할까요. 예를 들어 신안 성폭행 사건 같은 경우 말이죠."

 

A: "감정적으로는 사형시키자는 말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주목하는 사이, 우리는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특히 성폭력 같은 경우가 그렇죠. 가해자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적법한 절차를 거쳐 벌하자는 것입니다."

 

Q: "우리는 인권을 어떻게 지켜야할까요?"

 

A: "'인권 감수성'이라는 게 있죠. 우리는 항상 본인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해자도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막연한 동정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당할 수도 있다는 동질감이 필요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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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06-10 14: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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