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인터넷뉴스】하주성 기자 = 우리나라의 풍속에는 양수가 겹치는 날을 길일로 삼았다. 음력으로 1월 1일,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은 모두 양수가 겹치는 날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오늘이 음력 7월 7일로 바로 칠석이다. 칠석은 속설에 견우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날로 이 날은 비가 온다고 한다.
▲ 금오산 황덕사 칠석예불
이날 견우와 직녀는 일년 동안 떨어져 있다가 까마귀와 까치들이 놓은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설은 중국 주나라에서 발생하여, 한대를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져서 지금까지 구비전승으로 남아있다.
음력 7월이 되면 농촌에서는 본격적인 수확기로 접어든다. 세벌메기를 마친 농촌에서는 그동안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던 호미를 씻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놓는데, 이 때 ‘호미걸이’라는 민속놀이도 전해진다. 이 날은 술과 떡,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놓고 농사꾼들을 위로하곤 했는데, 이는 모두 일 년의 노고를 치하하는 행위이다.
▲ 황덕사 관음보전
칠석에는 비가 온다.
칠석날에는 보통 비가 내린다. 일 년 동안 떨어져있던 견우와 직녀가 만나 기쁜 나머지 흘리는 눈물이라는 것이다. 우리 풍속에는 ‘걸교’라 하여 처녀들이 견우성과 직녀성을 보고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었다. 또한 선비와 학동들은 견우와 직녀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으면 문장을 잘 짓게 된다는 속설도 전한다.
칠석날은 수명을 관장한다는 북두칠성에게 자손들의 수명장수와 부귀공명을 기원한다. 이 날 각 가정에서는 주부들이 분주하게 하루를 보낸다. 밀전병과 햇과일 등 제물을 차려놓고 고사를 지내거나,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의 무병장수와 가내의 평안을 빌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칠석날 이루어지던 풍속이다.
가정에 따라서는 무당을 찾아가 칠성맞이 굿을 하기도 하고. 절을 찾아가 칠석불공을 드리기도 한다. 농사꾼들은 농작물의 풍작을 위해 밭에 나가서 ‘밭제’를 지내기도 했는데, 이러한 칠석의 풍속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변해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자손들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 황덕사 안내 표지석
금오산 황덕사를 찾아가다.
오산시 경기대로 416번길 27에 소재한 금오산 황덕사(주지 수산스님).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의 오산지회이다. 칠석날 오전 10시 사시불공이 시작되기 전에 찾아간 황덕사는, 예불을 올리기 위해 신도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관음보전 입구에 있는 종무실에 들려 칠석예불 촬영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난 후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 황덕사 관음보전 내부
▲ 황덕사 관음보전 내부
황덕사는 1987년 5월 15일 회관건립 추진위원회를 발기한 후, 1987년 12월 3일 화성시 오산읍 오산4리 878-18에 천막을 치고 가건물을 지어 오산지회를 창건했다. 1988년 8월 24 일에는 봉불식을 거행하였으며(주정산 부원장, 도건, 용문, 진달, 법성스님), 1991년 7월 20일 대충 대종사로부터 사찰명을 황덕사로 임명받았다.
현재 법당은 2000년 6월 26일 총대지 1,154평에 건평 3층 400평 규모의 사찰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1차적으로 1층 200평을 낙성하여 법회를 열고 있다. 칠석날이라 그런지 법당 안에 자리를 잡고 예불에 참석한 불자들은 연세가 많으신 노보살님들과 보살님(여자 신도)들이 대부분이었다.
황덕사는 한마음 문화제를 비롯해 지역을 위한 각종 행사를 하는 곳이다. 연세가 드신 노보살님들을 위해 법당 뒤편에 의자로 자리를 마련한 것만 보아도, 스님의 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절에서 자손들을 위한 칠석불공을 드린다면 자손들이 부귀공명하고 수명장수하지 않을까? 괜히 예불을 드리는데 방해를 하는 것 같아 조용히 법당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