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인터넷뉴스】기획취재팀 = 기자들에겐 자료가 생명이다.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가치가 없는 자료일 것 같은 것이라도, 기자는 그 자료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은 그 자료가 언젠가는 요긴하게 사용이 되기 때문이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철칙으로 삼는 일이 있다. 바로 자료의 보관이다. 하기에 내 자료에는 10년을 훌쩍 넘긴 많은 자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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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2월 3일 오산장의 모습 |
오산을 찾았던 것은 2005년 2월 3일이다. 궐리사 취재를 들어갔던 날, 날이 추웠다는 기억이 난다. 마침 오산장날이라고 해서 오산장을 찾았다. 그 당시에는 오색시장이 아닌 중앙시장이라는 시장명(市場名)을 사용하고 있었고, 장은 물론 장 주변에도 수많은 난장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오산장은 나에게는 좋은 자료였다. 여기저기 늘어 선 난장 틈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추위를 잊기도 했으니 말이다. 장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5일장의 풍취에 푹 빠져있던 시간이었다. 결국 정작 보고자 했던 궐리사는 가보지도 못하고 돌아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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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장을 찾은 날은 바람이 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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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곽에도 손님들이 넘쳐났다 |
할머니 춥지 않으세요?
당시 오산장에서 채소를 팔고 계신 할머니는 연세가 많이 들어보였다. 2월의 날씨는 손이 떨어질 것 같았는데, 털모자를 쓰고 채소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어르신을 보고 괜히 눈물이 왈칵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 춥지 않으세요?”
“한 겨울인데 춥지 안 춥겠어.”
“따듯한 국물이라도 좀 드시지 그랬어요.”
“장사하는 사람이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무슨 돈을 벌어”
그것이 할머니와 나눈 이야기의 전부이다. 제주에서 올라온 무가 두 개에 천원이라고 써 붙인 채소난장에는 그야말로 별별 것들이 다 있었다. 물건을 사는 아주머니와 흥정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장사를 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단골이 한 두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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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날씨 탓에 뜨끈한 국물을 |
▲ 진열한 생선들도 얼어붙고
옛 기억을 하면서 오색시장에 젖어보니
신문에 오색시장 이야기를 연재를 하면서 장날이 되면 오색시장으로 나간다. 옛날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장거리이지만, 지금의 장은 물건도 더 많아지고 다양한 상품들을 만날 수가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그동안 장 분위기도 꽤나 변한 듯하다. 더구나 올해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선정이 된 오색시장은 앞으로 3년 동안 많은 변화를 할 것이다
“우리 회장님께서 워낙 일 욕심이 많으세요. 회장님이 상인회를 맡고난 뒤 참 많이 변했어요.”
▲ 채소를 팔고 계시던 할머니
▲ 도로변에도 많은 난장이 서 있었다
상인회 사무실에서 만난 직원의 말이다. 시장은 변한다. 오산장이 중앙시장으로, 그리고 다시 오색시장으로 변했다. 변화는 했지만 오색시장은 아직도 오산장이다. 5일마다 한 번씩 오산장에 된다.
그리고 오색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여기저기 중앙시장이라는 글씨들이 보인다. 비록 장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시장 상인들과 시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심성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인 듯하다. 푸근한 정이 넘쳐나는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