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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으로 고향들판 읊은 詩人 - 27년 농협맨 김재용 시인 첫 시집 ‘벼꽃, 너는’
  • 기사등록 2013-12-24 14: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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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달빛이 고요히 흐르는 냇물 위를 비췄다.

 

정적에 싸인 오산천 위로 달빛 부서지는 소리, 한 시인의 발자국 소리만이 휘감겼다.

 

달은 밝았다.

 

적당히 취기에 오른 시인은 내딛는 발걸음마다에 시상을 구상하며 타박타박 걸었다.

 

한편 두편 시는 그렇게 오롯이 탄생했다.

 

그 곁으로 천국으로 다다를 듯한 무지개 다리가 달빛에 빛났다.

 

물질을 보는 것은 눈(眼)이요, 거기에 마음의 색칠이 더해지면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지라.

 

시인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은 모두 詩였다.

 

시인의 아내 또한 곱고 아름다운 심성을 지녔으매 양평 시골농장에서 키울 병아리를 구하러 인천 영종도까지 다녀온 굳은 의지를 지닌 여인이다.

 

고물고물 삐약삐약 병아리들을 종이상자에 담아 지하철을 타고 서울 자택까지 옮긴 그 열정은 일견 귀엽기까지 하다.

 

▲ 김재용 오산문인협회 부회장이 첫 시집 '벼꽃, 너는'을 펴냈다.

 

오산을 고향으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27년 농협맨으로 현재는 오산농협 역전지점장으로 근무하는 김재용 시인.

 

그는 고교시절 교내 백일장에서 시부문 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미 안정된 시상을 자랑했다.

 

평온하고 사실적이며 혹은 유쾌하고 슬프기도 한 그의 시는 어쩌면 이 때의 심상에 기인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몇 년 전 오산세마지점 농협 근무 당시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오산문인협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2009년 경기문협 및 오산문협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 문예사조로 등단, 2013년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 공모에 시 ‘민들레’가 당선됐다.

 

인생이라는 편도행 열차에 의미 남을 무언가의 흔적을 열망한 그는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그 결과 1년에 몇 편 짓기도 어려웠던 작품들을 일주일에 5편씩 쏟아내기도 했다.

 

1년 6개월을 쏟아 부었다.

 

▲ 김재용 시인이 정성을 고스란히 담은 시집.

 

사랑스런 아내와의 말다툼도 시가 됐고 편찮으신 아버지의 모습도, 태풍과 맞물려 캠프를 떠나는 자식에의 사랑도 모두 詩로 환생했다.

 

물론 아내가 원거리에서 직접 공수한 저 병아리들도.

 

시의 프리즘을 덧대는 일은 그에겐 생명수였다.

 

생활의 활력이 됐으며 일상의 모든 것이 詩의 주제로 변신했음은 물론이요 자기정화의 기능까지 거두게 됐다.

 

“아름답다!”

 

마침내 그는 시의 언어와 시의 일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문인협회 오산지부 부회장으로 1%이웃사랑실천모임 운영위원장으로 바삐 움직이는 그이지만 앞으로 정년까지 1~2권의 출판을 염두해두고 있다.

 

퇴직 기념으로 아끼는 지인들에게 나눠준다는 야무진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

 

단지 글이 좋아서 시작(詩作)을 시작했다.

 

파릇한 20대 시절 군에 간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며 답장이 오지 않아도 친구가 좋아, 글이 좋아 편지를 썼던 것처럼 그는 지금 시를 쓴다.

 

말로 풀어내는 마음보다 시로 풀어내는 마음이 고와 일상언어에 각별히 주의하며 말을 아낀다는 그는 세월이 안겨준 보상일까 임기응변에도 능하다.

 

인터뷰 사진을 부탁한 직원이 사무실로 들어오자 “그러니까, 퇴직할 때까지 시집 두 편 정도를 더 발간해서.. ”하며 자연스레 이야기끈을 풀어낸다.

 

마치 처음 꺼내는 주제인 것처럼.

 

▲ 인터뷰 중인 김재용 시인.

 

오산을 고향으로 둔 그인지라 고향 들판을 걷고 보고 숨쉬며 그네들의 이야기를 시로 고스라히 전해왔다.

 

시의 세상으로 ‘한 톨 한 톨 던지는 고요한 외침’처럼 소년을 닮은 그의 해맑은 미소와 순박한 마음은 오늘도 그의 시상 어디에선가 향긋한 시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 김재용 시인의 첫 시집 '벼꽃, 너는'.

 

 

깨 터는 여인

                             - 김재용

 

오천원짜리 싸구려 바지에

고깔모자 쓰고

색 바랜 스카프 휘둘러

깨를 턴다

씰룩거리는 엉덩이 위로

빙빙 도는 도리깨

들깨는 웃겨 죽을라 한다

타닥

타다닥

배꼽 터진다

곁에서 졸던 강아지

깜짝 놀라

가을하늘을 도리깨질해댄다

잠잠히 누워있는 멍석이 한마디 한다

“얼씨구 서 말씩이나”

키질하는 손 끝에

고소한 땀방울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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