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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 전하는 신비한 옛 이야기들(35) - 이영주 기자, 구비전승42회 지명유래-대원동②
  • 기사등록 2013-12-21 1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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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오산시는 6개 행정동과 24개의 법정동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대원동은 고현동, 원동, 청호동, 갈곶동 등 4개 법정동으로 이뤄졌다.

 

앞서 고현동 지명 유래에 이어 원동 이야기를 전한다.

 

 

■ 대원동

 

(2) 원동

원동 명칭은 현재 원4통 지역으로 원래 이 마을이 원동이었으며 원동골이라고도 불렸다.

 

예전에는 이곳 동산에 갖가지 꽃이 만발해 보기도 좋았고 유명했다고 한다.

 

원동은 당말, 역말, 우촌말, 밀머리라 불리는 자연마을이 있다.

 

이외에 농바위산, 장승백이, 샘통골, 당제터, 푯대백이, 박우물, 동네우물, 순우물, 바둑구지, 진말뿌리, 우촌산, 역말고개, 절골약수터, 가마미고개, 기재밭, 대밭, 원동저수지, 집너머 등의 땅이름이 나타나고 있다.

 

▲ 원동 명칭은 현재 원4통 지역으로 원래 이 마을이 원동이었으며 원동골이라고도 불렸다.

 

* 당말

오산시의 가장 동남쪽 끝에 있는 마을로 당촌이라고도 했다.

 

예전부터 당집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는 당집은 남아있지 않고 그 터만 존재한다.

 

당집터에는 깨진 기와장과 주춧돌 등이 남아 있어 당집이 있었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청송 심씨가 처음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현재 마을입구에는 심승지의 집터라고 알려지는 곳이 남아 있다.

 

예전에는 꽤 번성했던 마을이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진입의 불편을 겪게 돼 현재는 약 30여 호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마을로 변화했다.

 

청성 심씨가 대성을 이루면서 살았던 당말은 일찍이 당집이 있어 매년 산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인근 마을도 ‘당집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당말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당말 유래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서려 있다.

 

심씨 선대조 어르신 중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어느 주막에서 잠을 자게 됐다.

 

당시 꿈에 돌이 나타나는 현몽을 꿨는데 다음날 어느 개천을 건너다 보니 꿈에서 본 돌과 똑같은 돌이 보여 그것을 가지고 과거장에 들어가 과거시험을 보게 됐다고 한다.

 

그 결과 선대 어르신은 과거에 급제하게 됐고 그걸 가지고 집에 돌아와 신으로 모시게 됐다.

 

그 돌이 당말의 당집에 모셨던 돌이라고 전해 내려온다.

 

이제 당말에는 노적산, 배꼽산, 앞산, 삼태골, 선바위, 순우물, 당우물, 당말 앞들, 당집, 당집터, 절골, 등의 땅이름이 남아 있어 당말이라는 마을의 유래를 알려주고 있다.

 

한편 당말에는 청송 심씨 이외에도 전주 이씨, 풍양 조씨, 경주 김씨 등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원동에는 당말, 역말, 우촌말, 밀머리라 불리는 자연마을이 있다.

 

* 역말

역말은 역촌이라고도 하며 예전에 청호역이 있던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면서 고속도로 너머 동쪽에 있는 관계로 발전이 더딘 지역이다.

 

현재 10여 호 정도가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나타나는 기록으로 보아 역말은 600년 이상 된 마을로 추정된다.

 

역이란 한양과 지방을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 가는 숙박시설이나 말을 위한 마구간 등이 있어 번화했던 곳이었다.

 

청호역은 삼남대로에서 동쪽으로 1km 이상 떨어진 작은 골짜기 입구에 있었으며, 가천역과 화천역도 삼남대로에서 각각 2km, 3km 이상 떨어져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에 일찍이 실학자 유형원도 전국적으로 많은 역이 길 옆에 있지 않고 길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해 도로의 운영에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었다.

 

이러한 역촌은 19세기 후반 이후 그 기능을 대부분 상실해 현재 그 형태나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지명 등을 통해 위치의 비정 정도가 가능할 뿐이다.

 

한편 역말에는 가운데 우물, 역말저수지, 역말천, 역말다리, 역말뒷산, 역말약수터, 장승백이 등 역말이라는 지명과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는 땅이름이 많이 남아 있다.

 

 

* 우촌말

우촌말은 역말의 우측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이 마을의 소가 일을 잘한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 평택군 진위면에도 우촌말이 있어 혼돈을 피하기 위해 ‘수원 우촌말’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한편 일설에는 우 장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장군이 마을 공동우물에 큰 돌멩이를 하나 가져다 놓은 뒤로 ‘우 장군이 공동우물에 돌멩이를 갖다 놓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우촌말이라고 불렸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한편 우촌말은 전주 이씨가 예전부터 대성을 이루면서 마을을 형성했으나 최근에는 거의 다 떠나고 여러 성씨가 섞여 살고 있다.

 

더욱이 대우푸르지오 아파트가 만들어지면서 마을의 옛 모습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현재 우촌말에는 청고개, 청이, 학교산, 뒷동산, 큰우물, 두께우물, 불당굴, 간댐물, 장승거리, 절뒤고개, 시장터, 솔머리, 텃논, 숲바께논 등이 땅이름이 남아 있다.

 

* 밀머리

밀머리는 현재 원2동으로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남쪽에서 화성경찰서가 있는 곳까지의 마을로 예전에 장마가 지면서 오산에서 물난리를 피해 사람들이 많이 밀려와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밀머리는 오랜 옛날에 배가 닿을 정도의 포구였으며 이곳으로 인천의 소금배까지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일설에는 밀머리를 개미허리, 혹은 갬둘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밀머리에는 두께우물, 대동우물, 하우고개, 치고개, 원동천일사거리, 유림사거리, 개미들, 병막산, 유원동육교 등의 땅이름이 남아 있다.

 

한편 원3동 지역은 오산역, 오원교, 쪽다리, 순우물, 대동우물, 개장께, 역전, 복개천, 붓뜨랑천, 붓뜨랑뜰, 원리냇가, 문화의 거리 등의 땅이름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서 오산역과 관련된 자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원래 오산역은 경기도 오산시의 한국철도공사 경부선에 있는 역으로 1일 9회 무궁화호 열차가 정차하는 역이다.

 

2005년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경부선 선로를 따라 운행을 시작하면서 그 중간역이 됐다.

 

오산역이 영업을 시작한 때는 일제시대 이전인 1905년 1월1일이었다.

 

경부선 철길이 놓이면서 오산은 급속하게 발전했고 현재의 오산 역사는 2002년 11월28일 준공된 건물이다.

 

2005년 1월20일 수도권 전철의 운행이 시작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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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1 개)
  • 원주민2013-12-23 06:00:49

    법정동(24개)을 행정동(6개)으로 명칭을 통일...복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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