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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 <열린책방> 책아저씨의 이야기 보따리

제11편-영원한 충의의 기록, 백범일지·안중근의사 자서전

 

▲ 영원한 충의의 기록으로 꼽히는 왼쪽 백범일지와 오른쪽 안중근 의사 자서전. 

 

최근 어떤 일본인들이 백범 김구선생과 안중근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폄하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현역 고위 관리 아무개가 “안중근, 그는 우리 입장에서는 범죄자”라고 시비를 걸었다는 기사가 도하 각 신문에 실려 있었는데, 그동안 그들이 쏟아낸 숱한 망언 중에서도 가장 괘씸하게 들렸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고 노심초사 형극의 길을 마다않고 뛰어들어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던 의거를 한낱 테러리스트들의 만행에 비유하려 들다니, 이웃나라를 침략한 역사에 책임을 느껴야 할 일본정부 최고위층 인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사회의 일부 인사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미화하는 발언을 하고 그에 부화뇌동하는 젊은이들도 많다는 소식이 또한 들려와서 마음에 심히 좋지 못했습니다.

 

독립전쟁의 일선에서 정의를 집행하셨던 두 분 선현의 업적을 폄훼하려 드는 못된 인사들의 언동에 기분이 상해 있던 차에 백범일지 각 판본과 안중근의사 자서전을 원문 영인본 포함하여 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의 내용에 감동되는 바가 커서, 서툰 글이나마 몇 가지 감상을 옮겨 후손된 도리를 해볼까 합니다.

 

백범 김구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갖은 풍상을 견디시며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망명정권을 이끌고 이국땅을 전전하시며 이봉창 윤봉길 열사의 거사를 주관하시는 등의 의거를 일으키셨고, 젊은 애국지사들을 모아 광복군을 편제하시고 국내 진공을 준비하셨습니다.

 

선생은 일찍이 약관의 나이로 일본 육군중위 쓰치다 조료(土田讓亮)을 처단하셨는데, 이 건을 들어 살인강도 운운하는 일본인들이 있고 국내에도 그에 찬성하는 막종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안중근의사가 적장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하얼빈 거사에 시비를 거는 일본인들의 망언들과 함께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죄과로 필히 깨우쳐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군 중위 쓰치다 조료를 처단한 속칭 치하포 사건은, 당시 21세의 청년이었던 백범선생이 의군좌통령의 자격으로 당당하게 적의 장수와 결투하여 전과를 얻은 의거였습니다.

 

이 나라를 침탈해 오던 왜적들이 범궐을 하여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소식을 들은 선생이 복수를 위해 의병을 이끌고 떨쳐나섰다가 패전을 하고 절통해 하던 차에, 변복을 하고 칼을 숨긴 적의 간자를 발견하고 분기탱천 결투 끝에 척살한 의거였는데, 억지 트집을 잡아 의미를 퇴색시키려 드는 것입니다.

 

저놈이 보통 상왜(商倭)나 공왜(工倭)같으면 당지(當地)는 진남포 대안이므로 일일 수명의 왜가 왜의 본색으로 통하는 곳이라.

 

당금 경성 분란으로 민후(閔后)를 살해한 삼포오루(三浦梧褸:미우라 고로)가 잠도(潛桃)함이 아닌가.

 

만일에 차(此) 왜가 삼포가 아니더라도 삼포의 공범일 것 같고 하여튼지 패검밀행(佩劍密行)하는 왜로서는 우리 국가 민족의 독균일 것은 명백한지라.

 

저놈 한 명을 죽여서라도 국가에 대한 치욕을 설(雪)하리라.

 

위는 선생이 쓰치다를 처단하셨을 때의 각오를 기록한 백범일지 원문을 직해한 내용의 옮김입니다.

 

당시 일본은 수많은 세작을 풀어 조선의 모든 지역을 염탐하고 있었습니다.

 

국모를 시해한 왜인들은 그 첨병으로 그들 세계의 소위 지사들인 바, 품에 칼을 품은 채 조선인인 척 행세하는 변복 왜인을 발견한 선생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미우라 고로 일파의 세작질로 짐작하시고 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何故世態如是不公耶 嗚呼 强奪隣邦 殘害人命者 如此欣躍 少無忌憚 無故仁弱之人種 反如是陷困耶

 

(세상 일이 이같이 공평하지 못한가. 슬프다. 이웃나라를 강제로 빼앗고 사람의 목숨을 참혹하게 해친 자는 이같이 날뛰고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데, 죄 없이 어질고 착한 우리는 이처럼 곤경에 빠져야 되는가.)

 

이어지는 문장은 안중근의사가 남기신 자서전의 내용 중 이토 히로부미 처단 직전의 감상을 기록하신 부분입니다.

 

이 나라를 침범한 왜적의 만행에 분노하고 공평을 집행하려는 마음을 굳힐 때의 심정을 피력한 명문인데, 앞서의 백범일지의 내용과 통하기로 옮겨 보았습니다.

 

연하여 거사 이전 의병장으로 국내 진공에 실패하고 병사들을 흩뜨린 후 상심한 동지들을 위로하던 안중근의사가 맹세한 문장 일절을 옮깁니다.

 

公等皆隨意行之 我當下山 與日兵一場炔戰 以盡大韓國 二天萬人中 一分子之義務 然後 死以無恨矣

 

(“그대들은 모두 뜻대로 하라. 나는 하산하여 일본군과 더불어 한 바탕 장쾌하게 싸움으로써, 대한국 이천만인 중의 한 분자가 된 의무를 다한 다음에는 죽어도 한이 없겠다.”)

 

함께 의병을 이끌던 동지들에게 남긴 안중근의사의 유문인데, 의사의 하얼빈 거사는 독립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투였던 것입니다.

 

이는 다음 백범의 어록과도 뜻이 통합니다.

 

현금(現今) 소위 만국공법(萬國公法)이니 국제공법이니 하는 조규(條規) 가운데 국여국역(國與國亦) 통상통화(通商通和)조약을 체결한 후에 그 나라 임금을 살해하는 조문이 있느냐?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하여 국모를 살해하였느냐? 내가 죽으면 신(神)으로, 살면 몸으로 네 임금을 죽이고 왜놈을 씨도 없이 다 죽여서 우리 국가의 치욕을 설(雪)하리라.

 

백범선생이 일본군 중위 스치다를 처단하신 후 체포되어 첫 공판을 받으실 때 참관한 일본인 경찰간부를 꾸짖은 말씀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신, 의기남아로서의 결의를 보이는 문장들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피가 끓게 하는 명문들입니다.

 

時卽 向天大呼大韓萬歲三次後 拿入於停車場憲兵分派所

 

(그때 나는 곧 하늘을 향하여 큰소리로 대한만세를 세 번 부른 후 정거장 헌병 분파소로 잡혀 들어갔다.)

 

다시 거사 직후 안중근의사의 처신을 기록한 자서전 속의 문장인데, 이처럼 당당한 모습이 또 어디 있습니까.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탄을 퍼부은 후 성패에 대한 결과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오로지 의기를 다했으니 여한이 없다는 심정으로 당당히 신분을 밝히고 나라의 만세를 축수한 후 체포된 경과를 한 줄 문장으로 기록해 놓았으니 후손된 우리가 어찌 피가 끓지 않겠습니까.

 

당시 의사는 일개 야인이 아닌 의병중장의 신분으로 300여 병력을 이끌고 국내 진공을 하였다가 패전한 후 망국의 한을 품고 만주벌을 종횡하여 적의 수괴 중 대표적인 하나를 추적한 끝에 하늘을 대신하여 벌을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男兒有志出洋外 事不入謨難處身

望須同胞警流血 莫作世間無義神

사나이 뜻을 품고 나라 밖에 나왔다가

큰일을 못 이루니 몸 두기 어려워라

바라건대 동포들아 죽기를 맹세하고

세상에 의리 없는 귀신은 되지 말게.

 

국내 진공 실패 후 동지들의 마음을 굳게 하기 위해 쓰신 안중근의사의 시입니다.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고 의를 태산같이 여기는 조선 선비의 혼…… 위의 문장들 어디에 사사로움이 있습니까.

 

오로지 망국의 한을 풀려는 우국충정으로 신명을 다하신 선인들…… 민족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 이 땅에 오셔서 빛이 되어 주셨던 국부(國父)로 연년세세 청사에 빛날 큰 어른들……

 

위의 시를 남기신 후 만주로 돌아온 안중근의사는 뜻을 같이 하는 동지 11인과 함께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하는데, 이때 왼손 넷째 손가락 한 마디를 끊어 결의를 다집니다.

 

유명한 대한국인(大韓國人) 서명과 손바닥 인장이 탄생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국내진공 당시 안중근의사는 포로로 잡은 일본인들 중에서 민간인을 ‘만국공법에 의거한 인도주의의 집행’ 명목으로 놓아 줍니다.

 

명분 없는 살상은 거사의 목적조차도 흐리게 만든다고 하신 안중근의사의 말씀은 자서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現今萬國公法 捕虜賊兵 殺戮之法都無 囚於何處 而後日賠還 況彼等之所言 眞情所發之義 談矣 不放何爲乎

 

(현재 만국공법에 사로잡은 적병을 죽이는 법은 없다. 어디다가 가두어 두었다가 뒷날 배상을 받고 돌려보내 주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말하는 것이 진정에서 나오는 의로운 말인데 안 놓아 주고 어쩌겠는가.)

 

당당히 대의를 밝혀 포로를 놓아 준 안중근의사의 태도는 근대 문명국의 교전규칙을 엄수한 전투의 결과로 문명인다운 인도주의적인 것이었습니다.

 

죄가 있는 적에게는 벌을 주고 무고한 시민이라면 그 인권을 존중해 준 의연함……

 

자식이 태어나면 제일 먼저 인의예지를 가르쳐 선비로서의 덕목을 쌓게 하던 우리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는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의 소원’ 제3장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한 부분을 옮겨 보겠습니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투쟁의 정신을 길렀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라져 싸우면 망한다. 동포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서는 언제나 춘풍(春風)이 태탕(駘蕩)하여야 한다.

 

안중근의사와 백범 김구선생, 민족의 큰 어른들로 독립운동의 별이 되신 분들……

 

무단한 적에게는 엄정한 벌을 내리면서도 용서와 화합을 잊지 않은 두 어른들에게 그때에 놓여 난 왜인들의 후손이 요즘 망언을 일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위 관리들이 앞장을 서서…….

 

기막힌 것은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철부지가 우리 사회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은 글인데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옮겨봅니다.

 

-김구가 그냥 일본인이라 죽인 게 아니라 돈을 보고서 죽인 거 같음. 핑계는 민비시해사건을 든 거고

 

-테러리스트 김구 크라스 ㄷㄷㄷ 정한 터전마저 앉는다.

 

-조선의 빈라덴!

 

-김구는 자신의 살인욕을 채우기 위해 민간인을 살해하엿고 몇명의 일본장교를 죽이기 위해 폭탄을 던져 다수의민간인에게 상해를 입혓으며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정부건립을 지연시키고 방해하엿던 인물

 

철자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인 이 글들은 필경 한글을 약간 깨친 일본인들 중 어떤 망나니들의 장난일 것입니다.

 

저는 우리 민족의 성원 중에 이런 글을 지껄이고 있는 이는 없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설마 반듯한 배달민족의 후예가 저들의 망발에 동조하지는 않았겠지요.

 

-친필본 그게 궁금해지는 군요... 저도 읽어보질 못했습니다..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일반인들에게는 성역입니다.. 심지어 해방후의 행적까지도 성역이 되어 버렸습니다...항일 운동에 대한 정신과 업적은 존경하지만 모든것이 옳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이글이 폄하의 수단이 될거라고 생각해서 적극적 옹호론으로 변질시켜서 너희들은 친일이다라는 딱지가 날라올것으로 예상되는 포스팅 입니다.......-_-;;

 

-진보주의자들도 김구의 테러노선에 대해 비판적인 분들은 많더군요. 물론 그런다고 이승만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요즘 젊은 세대들의 무비판적인 추종은 눈에 거슬리는 점이 많습니다.

 

그나마 나은 게 위의 글들인데 스스로 확인하여 알려하지 않고 남의 말을 무조건 믿어버리는 젊은이들의 행태가 확연히 보여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아래는 백범일지의 마지막 편인 ‘나의 소원’의 서두 부분입니다.

 

백범선생의 일생 위업을 정리한 명문입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70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하려고 살 것이다.

 

선생은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셨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한이 많았을 선생은 소망이었던 독립을 성취한 이후에는 모두 용서하고 뭉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기록한 ‘나의 소원’ 제3장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 기록된 선생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옮겨, 앞서의 철없는 젊은이들이 선생의 뜻을 살펴주기를 바래봅니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투쟁의 정신을 길렀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라져 싸우면 망한다.

 

동포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서는 언제나 춘풍(春風)이 태탕(駘蕩)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선생은 그렇듯 용서와 화합을 강조하셨는데, 적은 다시 힘을 기르고 무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다시 침략의 명분 쌓기를 시작하여 소위 신정한론(新征韓論)까지 들고 나오는 판입니다.

 

우리가 각오를 다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余가 韓國獨立을 恢復하고 東洋平和를 維持하기 爲하여 三年間 海外에서 風餐露宿하다가 竟히 其目的을 到達치 못하고 此地에서 死하노니 惟我二天萬兄弟姉妹는 各者奮發하야 學問을 勉勤하고 實業을 振興하여 我의 遺志를 繼하야 自主獨立을 恢復하면 死者無憾이라

 

1910년 3월 25일, 안중근의사가 순국하기 하루 전의 대한매일신보의 기사 중에 보이는 안의사가 우리 후손들에게 남기신 글입니다.

 

위의 백범선생이 남기신 ‘나의 소원’ 중의 인용부분과 함께 우리가 나가야할 바를 가르쳐주신 것 같아 엄숙하게 읽었습니다.

 

저는 백범일지와 안중근의사 자서전을 읽으며 시종 “참으로 충의의 글들……!”이라고 탄식을 하였습니다.

 

특히 안중근의사 자서전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치밀어 오르는 감격에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유명한 ‘大韓國人’의 서명을 발견한 탓이었습니다.

 

一千九百十年 三月 十五日 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畢書

(일천구백십년 삼월 십오일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기를 마치다.)

 

이번에 제가 읽은 백범일지와 안중근의사 자서전은 노산 이은상선생의 주해 ‘안중근의사 자서전’과 ‘대한매일신문(현:서울신문) 발행 백범 김구선생전집’의 첫째 권과 둘째 권의 전면에 실린 원문 영인본과 주해본이었습니다.

 

저는 두 책의 발간 기록을 보면서 우리 민족의 운명을 보는 듯해 또 한 차례의 서러움을 얻었는데, 백범일지의 최초 출판본인 국사원 판본과 최종결정본인 도진순 주해본이 나오기까지에는 친필원고로부터 재판기록으로서의 증거자료와 먼 이국땅 소장자로부터의 헌신적인 기증까지 갖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안중근의사의 자서전에 이르면 한층 더해서 원본은 적국의 문서보관소에 감추어 햇빛을 보지 못하고 겨우 원본에서 동초(同抄)한 사본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선현의 사적을 밝히기로 하면 끝이 없을 터이므로 이만 종결을 지겠습니다.

 

참고로 덧붙이면 안중근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여순의 감옥에서 돌아가셨고, 백범 김구선생은 1949년 6월 26일 정오경 육군소위 안두희의 흉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래에 안중근의사의 유언과 김구선생이 휘호로 즐겨 쓰셨다는 서산대사의 한시를 옮겨 말미로 삼겠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르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 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 발걸음을 어지럽게 하지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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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11-22 16: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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