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데스크 칼럼] 평생 우려먹을 '武勇談' - '희망'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쉼 없이 또 달리자
  • 기사등록 2013-10-30 15:13:51
기사수정

[데스크 칼럼] 조윤장 편집국장 = 「평생토록 우려먹을 무용담(武勇談)」

 

BC 480년. 인류 역사상 가장 용맹하고 위대한 전사 300명이 적국 100만 대군과 맞섰다.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왕이 지휘하는 100만 대군이 그리스로 향한다.

 

이에 레오니다스 스파르타 왕은 전사 300명을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을 지킨다.

 

100만 대군과 맞서는 무모한 싸움이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한 스파르타 용사들은 나라와, 가족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 불가능한 이 전투에 올인한다.

 

거침없는 용맹이 빛을 발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장렬한 죽음으로 최후를 맞는다.

 

전쟁영화 ‘300’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감독 잭 스나이더)

 

용감하게 싸움한 상황을 묘사하는 이야기를 무용담(武勇談) 또는 무담(武談)이라고 한다.

 

만일 이 전투에서 스파르타 전사 300명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살아남았다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야 말로 진정한 무용담이다.

 

오늘은 필자가 독자님들께 너그러운 양해를 정중히 부탁드리며 얼마 전에 생전 처음으로 겪은 마라톤 경험을 무용담으로 늘어 놓을까 한다.

 

가을이 깊어가는 2013년 10월13일 ‘제10회 오산독산성 전국하프마라톤’대회가 있었다.

 

각각 4.8km 건강달리기, 10km, 그리고 하프코스(21.097km)로 나뉘어 진행됐다.

 

멋모르고 어줍지 않은 의지만 앞세워 필자가 참여한 구간은 하프코스다.

 

원래 마라톤(marathon)은 42.195km를 달리는 최장거리 육상종목으로 인간의 지구력과 한계를 가늠하게 한다.

 

마라톤 유래는 아주 오랜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490년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은 그리스가 승리했고, 병사(兵士) 휘디피데스가 마라톤광장~아테네까지 40km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가 승전보를 알린 뒤 숨을 거뒀다.

 

마라톤 기원은 여기서 비롯됐다.

 

1896년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1회 근대올림픽부터 종목으로 채택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조선 26대 고종(高宗) 황제 즉위 31년 무렵 조선정부가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를 통해 재래문물제도를 버리고 서양의 법식(法式)을 받아들여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제도에 새로운 국가체제를 확립하려던 갑오개혁(甲午改革)을 앞둔 시국이다.

 

1894년 7월부터 1896년 2월까지 3차례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으로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고도 한다.

 

마라톤은 최초 42.195km 거리를 경기에 도입한 런던올림픽(1908년)부터였으며,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에 정식으로 채택됐다.

 

남자들만 참여하는 경기로 여겨져 왔으나, 1960년 이래 미국을 시작으로 여성들 참여 요구가 고조되면서 1970년대부터 여자마라톤이 여러 대회에서 인정됐다.

 

그러다 1984년 LA올림픽 때부터 여자마라톤이 정식종목으로 가세했다.

이윽고 출발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남녀가 어우러진 건각들 무리에서 필자는 첫발을 내디뎠다.

 

3km 표지판에 이르자 서서히 무리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목이 타는 갈증은 기본이고 두 다리에서 가벼운 통증이 감지됐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과 오기가 발동했기에 정신을 가다듬고 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 몸은 천근만근으로 피로해졌고, 필자 뒤로 보이던 몇 명 또한 자취를 감췄다.

 

순간 달랑 혼자라는 생각에 허탈하고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두 발은 오르막길에서 걷고 평지와 내리막에서 뛰는 척 했다.

 

마지막 주자로 남은 필자를 보호(?)하며 뒤따르던 응급차와 경찰차는 이런 내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이따금씩 “안되겠으면 차에 타세요”를 연발하며 위로했다.

 

괜히 참가했다는 후회와 무기력으로 몸과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흐트러졌다.

 

그렇게 지옥같은 시간이 흐르면서 필자는 골인지점을 향하고 있었다.

 

운동장으로 들어섰지만 웬걸 대회는 이미 파장한 분위기다.

 

지칠대로 지쳤고 맥이 빠졌지만 그나마 주최측에서 배려한 전광판이 꺼지지 않고 기록을 재고 있었다.

 

2시간58분42초07..(칩을 반납하고 측정된 공식기록)

 

꼴찌다.

 

필자 뒤를 달리던 2명이 막판까지 보이지 않은 것으로 미뤄 짐작컨대 이들은 중도에 포기했음이 분명하니, 변명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꼴찌 아닌 꼴지다.

 

나름 포즈를 취해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운동장 풀밭위에 털썩 주저 앉아 숨을 고르며 완주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위안을 얻었다.

 

따지고 보면 이 정도는 얘깃거리도 아니다.

 

하프코스 참가자들 가운데 놀랍게도 필자보다 무려 스물아홉살이 많은 83세 노각(老角)은 물론 30대 중반 여기자가 있었다.

 

이들은 필자를 훨씬 앞선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야말로 거침이 없는 노병(老兵)과 여전사(女戰士)다.

 

우리나라 마라톤 역사는 일제강점기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에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가 2시간13분23초를 기록하며 월계관을 썼다.

 

한국최고기록은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수립한 2시간7분20초다.

 

마라톤(42.195km)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뇌를 갉아먹고 심장박동이 혈관을 부풀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뜀박질이다.

 

지구상에서 직립보행하는 유일한 존재 인간만이 누릴 수 있다.

 

뛰든 걷든 골인지점까지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목표점은 희망이고 종착점은 마치 죽음과 같다.

 

‘무엇이든 하면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완주자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13-10-30 15:13:51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최근 많이 본 기사더보기
뉴스제보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