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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스물 다섯 살 청년 '오산' - 지역균형개발·화합 전제한 양방향소통 절실하다
  • 기사등록 2013-09-25 17: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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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조윤장 편집국장 = 「스물 다섯 살 청년‘오산’」

 

100세 장수시대가 도래했다.

 

사람에게 가장 혈기왕성한 나이는 몇 살일까?

 

아마 스물 다섯 살 쯤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어른들은 이 시기를 가리켜 ‘무쇠라도 씹고 소화시킬 나이’라며 부러움으로 선망한다.

 

피끓는 젊음이 용솟음치는 20대 청춘은 어떤 거침이나 두려운 대상 또한 없다.

 

아직 철이 덜 들어 사고력은 미완이지만, 적어도 에너지가 넘치는 육체 만큼은 자신만만하다.

 

누구나 반드시 겪으며 지나치는 인생길이다.

 

오산시가 스물 다섯 살 청년이 됐다.

 

1989년 1월1일 시(市)로 승격되면서 2013년 25주년을 맞은 것이다.

 

시는 9월14일을 시민의 날로 제정, 체육대회 등을 통해 시민화합을 꾀하고 있다.

 

면적으로 따져 전국에서 손가락안에 꼽히는 화성군 17개 읍·면 가운데 행정 중심지였던 오산읍이 독립된 시로 거듭났다.

 

예나 지금이나 오산은 지형적으로 인근 지방자치단체에 둘러 쌓였다.

 

화성시 태안·동탄·정남과 평택시 진위 등이 사방으로 포진한 형국이다.

 

이렇게 보면 고립상태(孤立狀態)를 일컫는 고사성어‘사면초가(四面楚歌)’와 다르지 않다.

 

만일 땅덩어리를 놓고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퉜던 고대였다면 영낙없이 옴짝달싹 못하는 약소국(弱小國)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5패 7웅이 다퉜던 춘추전국시대가 아니기에 아무렇지 않게 웃고 넘길 수 있다.

 

과거부터 도시(都市)는 자연발생적 또는 인위적으로 생성(生成)된 뒤 성장(成長)을 거쳐 쇠퇴(衰退)한다.

 

인간의 삶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와 비슷한 과정을 밟는다.

 

오산시사(烏山市史)에 따르면 오산의 시작은 삼한시대 마한·진한·변한 등의 15개 소국 가운데 일부였다.

 

여기에 마한은 54개 부족국가로 이뤄졌는데, 지금의 오산을 비롯한 수원과 화성이 이에 속했다.

 

오산은 모수국(牟水國)·원양국(爰襄國)·상외국(桑外國) 가운데 모수국(현재의 오산·태안·정남·동탄·양감·향남·봉담·매송면 일대)에 위치했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1941년 10월1일 수원군 성호면에서, 해방 뒤 1949년 8월15일 수원군 오산면으로, 화성군 오산면에 이어 1960년 1월1일 화성군 오산읍을 거쳐 1989년 1월1일 오산시로 승격됐다.

 

때문에 오산은 독립된 시로 승격될 때까지 독자적 행정단위로 존재하지 못했다.

 

그러다 1990년대초 풀뿌리 민주주의 태동을 알리는 광역·기초의회가 출범하면서 정서 대립이나 생활권 불일치 등으로 불균형을 이루는 행정구역경계조정 바람이 전국에 불었다.

 

이에 정부는 행정구역경계조정이 필요한 지방자치단체들을 대상으로 1995년 3월21일 찬·반 주민투표에 부쳤다.

 

하지만 당시 화성군 동탄면과 평택군 진위면(일부)을 오산시에 편입하는 투표결과는 극히 미미했다.

 

평택군 진위면 일부(4.17㎢)만 오산시(40.56㎢)로 편입되는데 그치고 말았다.

 

아울러 수도권 9개 지자체 등 2012년 대통령 직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가 시행한 행정체제개편이 또 한 차례 있었지만 역시 무산됐다.(오산인터넷뉴스 2012.4.28/4.29/5.2/6.13 참고)

 

오산+화성 또는 오산+화성+수원 통합안이 거론됐지만 주민여론조사결과가 제각각으로 표출되면서 제외된 것이다.

 

따라서 3개 지자체장들은 갈등과 반목을 허물고 상생하자고 천명했다.

 

혹자는‘후유증을 봉합하고 화합과 상생발전을 지향한 것으로 고무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앞으로 행정구역조정과 관련, 기회가 또 있을지 모르지만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몸집이 크고 작음에 도시의 명운이 판가름 나는 건 아니다.

 

시쳇말로‘작은거인’이란 표현이 있다.

 

양적팽창(量的膨脹) 보다 질적내실(質的內實)에 고민하는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제 오산은 1989년 시 승격 당시 5만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20만명을 넘어 섰다.

 

분명 양적팽창은 성공한 셈이다.

 

지역균형개발과 20만 시민들이 어우러져 화합을 전제한 양방향 소통이 절실히 요구되는 싯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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