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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 <이종철의 오지탐험> = 「고산지대 베르미」

 

제7편-경북 봉화군 명호면 한국최고 고원 마을

 

▲ 삼동재에서 바라본 베르미 마을.

 

베르미를 삼동재에서 본 느낌은 실로 적막강산이었다.

 

산 정상 까마득히 점 하나로 보이는 마을의 두 집은 꿈 속에서 지나치는 환영으로 보인다.

 

‘과연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식량을 자급할까? 무엇 때문에 심산유곡 귀양지 같은 곳에 머무를까?’ 등등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 경북 봉화군 명호면 베르미 초입. 흙과 시멘트 길이 뒤섞인 빗길에서 수차례 넘어져 그의 '애마'와 의복이 마치 해병대 진흙체험한 것 같았다.

 

까마득히 보이는 실오라기 같은 좁은 길이다.

 

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심산의 8부 능선까지 수직으로 뻗은 협로만이 아득히 보일 뿐 이다.

 

좌우로 두 세 채만 보일 뿐 주변은 정글같은 악산이 존재할 따름이었다.

 

▲ 베르미 마을 중간 곰취밭. 잘 정리된 본새가 주인의 농사 솜씨를 보여준다.

 

수직으로 올라가는 좁은 진입로는 폭이 겨우 1m 정도에 각도는 오토바이도 헐떡거릴 만큼 수직경사다.

 

S자형 급커브 한편으로 수십m 낭떠러지가 입을 벌리고 마주해 공포심마저 들게 하는 오지탐방 최대 난코스였다.

 

하늘을 가린 숲길은 한낮인데도 어둠이 깔리듯 음울하고 마치 차마고도를 올라가는 양 실낱같은 길에 나무들도 가파르게 섰다.

 

▲ 나비와 매미가 마을의 주인인 듯하다.

 

베르미는 마치 식물과 곤충이 지배하는 영화속 요정의 마을이나 판타지같은 상상의 형태로 필자를 맞았다.

 

이런 길은 올라갈 때 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다.

 

수시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스쳐간다.

 

밭의 절반은 사람손이 미치지 않아 산과 구별되지 않는다.

 

▲ 일하러 다니는 농부는 폐가 지붕에 간판을 모아 비를 막았다. 그 풍경이 그런대로 인테리어 몫을 한다.

 

현재는 오로지 두 집만 사람이 살 뿐, 두어 집은 이미 쇠락하기 시작한지 오래돼 보였다.

 

맨 끝자락 집은 몇 년 전 휴양차 들어 온 70대 노인만이 거처로 살고 있을 뿐 인적은 간 곳 없고 간간이 농사일로 왕래하는 한 두명 정도가 보인다.

 

▲ 독특한 멋을 지닌 집 옆으로 소를 대여섯 두는 키웠음직한 넓은 축사.

 

중간의 한 집은 커다란 창고와 비를 막기 위해 도시에서 가져온 간판들로 지붕을 잇대 신구(新舊)의 조화(?) 같다.

 

▲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집. 살면서 이곳저곳 수리해 현재는 완연한

조립식 창고형으로 보인다.

 

그나마 이 집 또한 삶의 흔적이 없고 농사용 창고로 가끔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 주인인 금방이라도 소죽을 들고 나타날 것 같다.

 

과거 소를 대여섯 마리 정도 키웠음직해 보이는 커다란 2층은 지금이라도 외출하고 돌아오는 주인의 인기척이 고요속 축사에서 들리는 듯하다.

 

검은 호랑나비 한 쌍이 사랑을 나누는 틈 사이로 축하의 날개짓에 바쁜 동료 나비들의 군무(群舞)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하얀나비 노랑나비 그야말로 나비와 매미와 새의 천국이다.

 

오솔길 사이로 쭈뼛이 자란 잡초는 자기가 주인인 양 쉽사리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소리없이 흐르는 실개천에 산 속 모든 약초가 녹아있는 듯 그 향기가 달콤하고 온유하다.

 

이 곳 촌로는 폐옥을 고쳐 조립식 형태로 집을 더덕더덕 잇대어 살고 있다.

 

그나마 사람을 반기는 나비떼와 새소리만이 고요속의 밀림을 위로하고 있었다.

 

집 옆의 걸출하게 생긴 노송에 기대어 잠시 만상을 자아내는 명상에 빠져 본다.

 

예나 지금이나 이 곳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무엇 하러 여기에 살았을까.

 

밭떼기 몇 안 되는 여기서 과연 대를 이어 살아가는 연유가 무엇이었을까.

 

문득 로빈슨 크루소의 무인도 생활이 이와 같았을 것이란 결론에 미친다.

 

협곡에 띄어 놓은 패트맥주병 하나가 그나마 이 곳에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신호등이었다.

 

▲ 맥주와 사이다는 여느 계곡과 다를 바 없다.

 

이리도 호젓한 실천에서 매미와 풀벌레 소리에 나비가 귓가를 날아다니는 선경속에 문득 소주 한 잔 걸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오토바이 리어백에 비상용으로 넣고 다니는 소주를 꺼내 바가지에 한 잔 담아 마시고 있자니 문득 도연명의 시  ‘주찬(酒讚)’이 떠오른다.

 

한 잔 술을 마시면 근심걱정 사라지고

두 잔 술을 마시면 득도를 하며

세 잔 술을 마시면 신선이 되고

네 잔 술을 마시면 학이 되어 하늘을 나르지

다섯 잔 술을 마시면 염라대왕도 두렵지 않으니

어이 잔 잡아 권치 않으리

부모님께 올리는 술은 효도주요

자식에게 주는 술은 훈육주이며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는 술은 경애주요

은혜를 입은 자와 함께하는 술은 보은주라

친구에게 권하는 술은 우정주이고

원수와 마시는 술은 화해주며

동료와 높이 드는 술은 건배주라

죽은 자에게 따르는 술은 애도주요

사랑하는 사람과 부딪치는 술은 합환주라

 

옛날은 전기가 없었어도 6~7호가 있었다니 아마도 그 주인들은 이 곳을 떠났거나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렇기에 엄동설한 겨울은 모두가 발이 묶여 8개월 동안은 꼼짝도 못했으리라.

 

▲ 산양삼, 송이, 더덕 등을 자연상태로 관리 경작해 입산금지 간판이 세워졌다. 주변 영농단의 고소득 사업장으로 이용되는 현실이 아직 이곳에 경제적 농지와 임야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풍요함은 거의 없고 천혜로 간직된 원래의 자연만이 남은 이 곳에 산양산삼과 배양삼을 경작하느라 출입금지 팻말과 입산금지 차단막이 설치돼 있음은 나름대로 한적한 오지마을도 이용가치가 높은 듯 싶다.

 

이 곳이 바로 폐허로 전락한 오지가 아니라 생명이 살아 숨쉬는 천혜의 오지다.

 

이런 오지도 인간과 공생하는 본연의 윤회를 지녔다는 사실이 험산을 찾은 필자에겐 더 없는 위안이 된다.

 

나름대로 베르미의 원시적 자연에게 고마움을 간직하고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불과 4km 거리에 낙동강이 흐르고 명호면 소재지는 강변 유원지가 잘 꾸며져 시시로 인적이 흥청거리는 입구를 비교할 때 원시와 현대의 생활상을 영화 속에서 보는 듯 야릇한 현실에 절로 실소가 입가에 스친다.

 

올라갈 때와 달리 양 손목에 묵직한 힘으로 핸들을 꼭잡고 앞 뒤 브레이크 파열음을 굉음으로 토하며 긴장속에 10분여를 내려오니 악마와 뒹구는 꿈 속에서 도망이라도 나온 것 처럼 등과 허리에 소금땀으로 범벅이다.

 

다른 오지마을과는 달리 무언의 계곡과 숲, 천혜의 식생물이 예나 다름없이 자라고 숨쉰다는 안도와 위안속에 베르미는 영원히 뇌리 속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 산자락에 아득히 숨어 있는 8부 능선을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는 최종 진입로.

 

※ 이종철 오지연구소장은  “인간은 오지와 자연 경외, 자연보호 의식을 배우고 실천하는 길만이 오지와 상생하는 첩경이 되는 것”이라는  ‘필연’으로 전국의 오지를 탐험하고 있다.

 

▲ 이종철 오지연구소장이 펴낸 저서. 그의 3년여 오지 대장정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 냈다.

 

이 같은 그의 3년 장정을 담아 낸  ‘두 바퀴 오지탐험’ 저자이기도 하다.

 

▲ 베르미 마을 중간 정자소나무에서.

 

그는 최근 KBS·SBS·OBS· 방송국에 초빙, 오지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아울러 오산시문화해설사와  ‘진실로 잘사는 법’을 강의하는 웰빙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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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09-25 16: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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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1 개)
  • 오지가2013-09-26 06:08:00

    그 나이에 대단하구려,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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