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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밭의 전설
오랜 옛날 군터 건너에는 석산 굴에 숲이 우거져 호랑이가 출몰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에는 우물이 두 곳 있었는데 우물은 호랑이의 두 눈이고, 묘지가 있는 곳은 호랑이의 입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예전에 이마을에 연안 김씨가 많이 모여 살았으며, 그때 진사를 지낸 분이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가 돌아가시자 3년을 지극정성으로 시묘하였다. 어느 그믐날 밤에 부모의 묘소를 찾아뵙고 돌아오는데 날이 너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아 걷기도 힘이 들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불을 밝혀 줘 무사히 집에 돌아 왔다고 전한다.

◈궁터 부자의 전설
예전에 궁터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사람의 성격이 고약하고 남을 도울 줄 모르고 욕심만 많았다. 하루는 스님이 시주를 왔는데 뒤간에서 인분을 퍼서 주니 스님이 돌아서 가며 말하기를 "집안이 번창하려면 집에서 보이는 필봉산(내삼미동에 있는산)이 보이지 않아야만 한다"라고 혼잣말로 하고 가니 욕심 많은 부자는 흙담을 높이 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흙담을 아무리 높이 쌓은들 앞에 있는 산이 보이지 않을 리가 있는가. 결국 그짓을 계속하니 집안의 가세가 기울고 패가가 되었다고 전한다.

◈내삼미의 전설
어느 날 정조대왕은 원삼(源三)에 대령하고 있는 수원 유수(留水)를 불러, 이곳 고을의 이름을 물으시니, [문시백 송산림]이라고 아뢰니, 대왕께서 문(文)에는 필(筆)이 있는 법이니 필봉(筆峰)이라 고쳐라 하시었다. 그 후에 또다시 대왕께서 능행차를 하실 때에 다시 수원 유수에게 고을 이름을 물으시니 문시백 필봉동이라 아뢰니 왕께서 이곳 사면 주위를 관망하시고는 "송산골은 금로대송(錦老大松)이 울창하여 아름답고, 점이골(현재의 죽미령)은 대나무골과 대량골에 대나무가 아름다우며, 문시와 오미의 오동나무가 아름답구나. 이제 이곳을 삼미(三美)라 칭하라" 하시어 삼미가 되었다고 한다.

◈아기 업은 바위의 전설
서동의 신동아 아파트가 있는 뒤쪽 산에 아기 업은 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바위의 생김새가 어미니가 아기를 업고 있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아주 오랜 옛날 천지가 개벽을 할 때 서촌(현 서동)에 의좋고 서로 사랑하는 두 부부가 어린애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생활이 구차하여 내외는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살람이 피지를 못했다. 하루는 남편이 먼 곳으로 일을 하러 떠나게 되어 부인은 산마루까지 마중을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일을 떠난 남편은 여러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부인은 매일 아기를 업고 산마루에 올라가 남편이 길 떠난 쪽을 바라보며 기다리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의 소식은 끝내 없었고 아내는 아기를 업은 채 죽어 그대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장자못의 전설
아득한 옛날 외삼미동에 큰 부자가 살았다. 그 부짓집 앞에 깊은 연못이 있었는데 명주실이 한 타래나 들어가는 깊이였다고 한다. 어느해 나라에 큰 난리가 일어나니 이 부자는 재산이 아까워 안절부절 못하였으나 할 수 없이 피난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는 금은보화 패물을 그 연못에 숨기고는 피난을 떠났다고 한다. 그 이후에 청명한 날이면 연못에서 보석들의 서기로 빛이 났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 연못은 부자의 연못, 장자못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지금도 외삼미동에 방곡(뱅골)에는 연못이 있으나 지금은 양어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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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1-07-26 11: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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