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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 전하는 신비한 옛 이야기들(21) - 이영주 기자,구비전승 28번째‘궐리사은행나무’
  • 기사등록 2013-09-06 13: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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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공자(孔子 B.C.551~B.C.479 중국 춘추시대 사상가. 노나라 출생)의 사상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 궐리사.

 

오산 궐리사는 우리나라 2대 궐리사 가운데 하나이며, 나머지 하나는 충남 논산 노성(魯城)에 있다.

 

원래 궐리사는 중국 곡부현 궐리에 위치한다.

 

▲ 오산시 궐동 궐리사 은행나무에는 신비로운 전설이 전한다.

 

공자 64세손 문헌공(文獻公) 공서린 선생(조선 중종 때 문신)이 낙향해 강당을 짓고 마당에 은행나무를 손수 심고는 북을 매달고 두드려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던 곳이다.

 

선생이 타계하고 자연 폐해가 됐다.

 

200여 년이 지난 1792년에 정조대왕이 부왕의 능침 화산릉에 와서 오산쪽의 화남방을 바라보니 상서로운 서기(瑞氣)가 보이고 군조(群鳥)가 운집하는 경관을 보고는 신하를 시켜 살펴보라 명했다.

 

신하가 다녀와 은행나무에 얽힌 사실을 듣고 아뢰니 충효를 중히 여기던 정조 임금은 광덕에 있는 공자의 영정을 옮겨 화성 궐리사(현재 오산 궐리사)로 명명하고 사액을 내렸다.

 

그 때부터 마을명이 화성 궐리가 됐다고 전한다.

 

궐리사에는 목판으로 된 성적도(공자의 행적을 도해한 글과 그림)가 있다.

 

다음은 궐리사에 얽힌 전설이다.

 

공서린 선생이 작고하자 그가 처음에 심은 은행나무는 건물 폐허와 함께 죽었다.

 

2백년이 지난 정조 12년경에 죽은 은행나무가 자생해 1년에 수십 척이 자랐다.

 

인근 촌로들은 이를 기이하게 생각해 장차 공문(孔門)에 반드시 큰 경사가 있을 것이라 했다.

 

그 해 왕명에 의해 궐리사를 창건하게 됐다.

 

궐리사 본당 창건 당시 목수가 일을 하다가 대들보 위에서 급한 김에 방뇨를 했다.

 

감독관이 크게 노해 치죄를 하려 하자 갑자기 하늘에 구름이 모여 폭우가 돼 쏟아졌다.

 

목수가 방뇨한 오물도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갔다.

 

모두가 기이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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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09-06 13: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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