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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법륜스님과 함께 통일신라의 심장, 천년고도인 경주를 찾았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은 물론 가족여행을 통해 자주 방문했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신라통일을 이끌었던 정치지도자의 고뇌와 도전, 그리고 리더십을 주제로 왕릉(법흥왕, 진흥왕, 태종무열왕, 선덕여왕, 문무대왕릉)과 김유신 장군묘, 그리고 황룡사지(皇龍寺址)를 돌아보았다.

산 중턱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신라 제23대 법흥왕의 능, ‘사적 一七六호 신라 법흥왕릉’이라고 새겨진 작고 초라한 비석이 없다면 도저히 왕의 무덤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단아한 모습이다. 수 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몇 그루의 아름다리 소나무만이 능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초창기의 신라 왕릉은 화려한 조선시대의 왕릉과는 달리 별다른 치장을 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웅장한 김유신 장군묘보다 더 정다움이 느껴진다.

한낮 30℃를 넘는 폭염도 처음 병부(兵部)를 두고 율령(律令)을 반포, 불교를 공인 하는 등 신라의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법흥왕과 대업을 이룩한 여러 왕들의 열정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겔트족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 떨어진 로마인들이었음에도, 왜 그들만이 번영하고, 마침내 지중해 세계의 패자가 되어 천년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는가”란 의문을 품었다면 “한반도의 동남부 일대의 작은 나라인 신라가 어떤 리더십으로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여 천년동안 유지 할 수 있었는가”란 물음은 당연하다 하겠다.

우리와 비슷한 반도국가인 로마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대국(大國)으로 존속하고 유지된 국가(기원전 753년에 탄생하여 기원후 476년 서로마가 멸망할 때 까지 약 1200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지속)라면 신라 또한 이에 못지않다. 기원전 57년경에 건국되어 935년 고려에 멸망할 때 까지 약 992년 동안 존속되었다.

신라는 잦은 왜의 침략에는 고구려 광개토왕의 힘을 빌리고 백제의 침략에는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종국에는 당나라까지 물리쳐 삼국을 통일하였다. 그 이면에는 개방성과 현실주의의 정책이 엿보인다.

로마를 만든 것이 시련이었듯이 결국 신라도 자기영토를 넘보는 외세의 침략에 현실에 안주(安住)하기보다는 불안한 미래를 개척하기로 하였고 여기에 정치지도자들의 굳센 의지가 더하여 마침내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국가가 필요한 인재들을 배출한 화랑도 제도 또한 잊을 수 없다.

자신의 시신(屍身)까지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록(護國大龍) 하겠다는 문무대왕의 유언을 듣는 순간 새삼 숙연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인간이 어떻게 축생(畜生)으로 태어날 결심까지 했을까, 그것은 왕의 지위와 인간이라는 신분을 뛰어넘는 자기희생의 결단이며 지도자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지금 이 나라에 통일과 복지국가로의 도약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위해 헌신과 희생을 주저하지 않고 관용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는가. 국민의 눈에는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상대방을 헐뜯는 비방전문정치인만이 보일 뿐이다.

무릇 흥함이 있으면 반드시 쇠함이 있는 세상의 이치 탓일까. 그토록 번영했던 로마도 말기에 이르러 지도자의 리더십 부족으로 쇠락의 길로 갔으며 대업(大業)을 이룩한 신라도 왕과 귀족의 사치스러운 생활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이 어떠해야하는지를 한마디로 웅변한다고 볼 수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 정치는 구조적, 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바람직한 많은 변화 가운데 자기희생을 주저하지 않는 통일의 리더십이 창출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역사학자 E·H 카는 이야기 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바로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신라의 역사를 계승할 것과 극복할 것의 문제들에서 교훈을 얻기를 신라의 정치지도자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신다.

[ 이욱열 강남대 대우교수·정치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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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1-07-20 17: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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