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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열린책방> 책아저씨의 이야기 보따리

제7편-역사의 아버지 사마천의  ‘사기(史記)’ 

 

▲ 역사의 아버지 사마천의 '사기'.

 

각급 학교의 기말고사도 끝나고 곧 여름방학입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열혈 학부모들이 방학동안 읽을 필독도서 목록을 들고 방문해 주셨습니다.

 

대학입시에서 논술의 비중이 높아지다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매해 중·고교의 필독도서 목록에 반드시 오르는 책 가운데 사마천의  ‘사기’가 있습니다.  

 

완역본이 아닌  ‘청소년을 위한’이라든가 ‘한권으로 읽는’ 등의 부제가 달린 요약본  ‘사기’ 내지 ‘사기열전’들인데, 모든 역사서의 기본이 된  ‘사기(史記)’를 일찍부터 익숙하게 대하게 만드는 바람직한 독서라고 생각됩니다.

 

사기는 본기(本紀) 12편과 표(表) 10편, 서(書) 8편, 세가(世家) 30편, 열전(列傳) 70편 등 총 130편으로 구성된 만만치 않은 분량의 책입니다.

 

완역본은 학생들이 읽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아 요약본  ‘사기열전’ 등을 주로 권하는 것 같습니다.

 

권장도서 목록에 있는  ‘청소년을 위한 사기’를 살펴보니  ‘이걸 읽고 사기를 읽었다고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더군요.

 

열전 편에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다룬  ‘조선열전’이 있는데 해설 부분에 두어 줄 언급하고 넘어가는 등으로 편집이 너무 간략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 최초의 본격 통사로 모든 역사서의 기본이라는데 ‘언젠가 반드시 거쳐야 할 독서관문의 하나이니 기왕에 권하려면 완역본을 읽도록 해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기의 본기는 오제본기(五帝本紀)부터 효무본기(孝武本紀)까지의 12편인데, 역대 왕조 제왕들의 기록, 즉 통치사입니다.

 

이중 오제본기는 황제(黃帝)를 비롯한 전설상의 인물 다섯 분의 기록으로 본편 중의 황제의 기록에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는 설이 있는 치우(蚩尤)씨와의 쟁투 이야기가 있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기는 하, 은, 주, 진, 진시황, 초패왕 항우, 한고조 유방을 거쳐 한나라 역대 황제로 들어서는데 마지막인 효무본기가 우리 민족의 고대사와 관계가 깊은 한무제(漢武帝)편입니다.

 

그런데 정작 위만조선의 3대 왕 우거(右渠)를 죽이고 한사군(漢四郡)를 설치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고 선도(仙道)와 방사(方士) 이야기만 잔뜩 보여 실망이 됐습니다.

 

사마천 당대의 기록이라 정리가 안 됐던 듯싶은데, 한나라의 침략과 고조선의 저항에 관한 기록은 아쉬운 대로 열전 편의 조선열전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표(表)는 연표(年表)이고 서(書)는 제도사(制度史)입니다.

 

저는 서(書)편을 흥미 있게 봤습니다.

 

예(禮)·악(樂)·율(律)·역서(歷書)와, 천관서(天官書)·봉선서(封禪書)·하거서(河渠書)·평준서(平準書) 등 8권으로 이루어진 본편에 당시 중국천하의 법도·규범·의식, 예악제도(禮樂制度), 악률(樂律), 성상(星象), 기상(氣象)과 군사(軍事), 역법(曆法), 별의 운행을 살펴 하늘의 뜻을 읽는 점성술 및 천문학, 하늘에 제사를 지낸 봉(封)과 선(禪)의 기록, 치수와 관개사업의 기록, 재정 및 경제발전기록까지 일목요연하게 서술돼 있었습니다.

 

세가(世家)는 제왕의 창업과 수성에 공로가 높은 역대 제후의 기록입니다.

 

춘추오패(春秋五覇) 등 유력 제후국과 유후 장량, 승상 진평 등 한왕조 창건의 공신들이 수록돼 있더군요.

 

흥미로운 점은 공자세가(孔子世家)인데, 제후가 아닌 공자를 세가 편에 넣었음은 성인을 존중하는 의미였겠지요.

 

열전(列傳)은 사기 130편 중 절반을 넘는 분량으로 당시 중국천하 주요 인물들의 기록입니다.

 

유협열전(遊俠列傳), 유림열전(儒林列傳), 화식열전(貨殖列傳), 자객열전(刺客列傳) 등 전문인들의 기록과, 관·안열전(管·晏列傳),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상군열전(商君列傳),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맹자·순경열전(孟子·筍卿列傳) 등의 정치가·군인·사상가들의 기록과, 남월열전(南越列傳),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등 소위 만이(蠻夷)들의 역사까지 폭넓게 수록돼 있습니다.

 

고조선과 싸운 전쟁사를 기록한 조선열전도 이에 속하는데, 내용은 중국의 입장에서 서술돼 서운한 점이 많더군요.

 

사기는 총 130권, 52만 6천여자의 한문자로 기록된 방대한 책입니다.

 

원제는 ‘태사공서(太史公書)’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 ‘사기(史記)’는 후세에 붙여진 이름이라지요.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대대로 사서의 기록을 맡은 태사령의 후예로 초자연적, 비이성적인 사건은 적극 배격했다고 합니다.

 

예로 오제본기에 앞선 삼황본기는 전설상의 이야기이므로 사마천이 기록하지 않았는데 후에 그의 후손이 보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기 이전에도 좌구명의 ‘국어(國語)’나 공자의 ‘춘추(春秋)’등 단대사(斷代史)를 기록한 책은 있었지만 태고로부터 당대까지의 모든 기록을 살핀 통사는 없었다고 합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열전 편의 시작인 백이열전(伯夷列傳)은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와 함께 사기 전편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천하에 산일(散佚)된 구문을 망라하고 왕자(王者)가 사업을 일으키는 과정을 살펴 흥망성쇠를 관찰하고 논평했다’고 말한 태사공자서의 기록이 사기의 저술 목적과 구성을 설명하고 있다면, 백이열전에 공자의 말을 빌려 기록한 ‘군자는 세상을 마친 후에도 이름이 칭송되지 못함을 부끄러이 여기는…’ 부분은 참된 삶을 군자의 표상으로 여기고 사기 전편에 이를 반영한 태사공 사마천의 뜻을 짐작하게 합니다.

 

사마천이 태어난 한나라 효경제(孝景帝) 때는 중국천하가 오랜 전란을 끝내고 통일을 이룬 모처럼의 태평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과거 전국시대 때에 성했던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 이해득실을 논하고 성인의 도를 칭송하는 융성기였는데, 태사공자서에 보이는 논조와, 손자·오기열전, 노자·한비열전에 손빈·방연과 한비·이사를 대결시켜 선악의 대비로 나타나는 등으로 배우는 바가 많았습니다.

 

태사공 사마천의 생애는 그 자체가 하나의 사표(師表)입니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집안으로 부친인 사마담(司馬談)은 나라의 기록을 맡은 태사령이었는데, 무제(武帝) 때에 태산(泰山)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봉선의식(封禪儀式)이 있을 때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못한 것을 통분하게 여겨 분사(憤死)했다고 합니다.

 

사마천은 “공자가 춘추(春秋)를 저술한 이래 끊긴 통사를 기록하라”하는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소자 불민하나 구래의 기록을 정리해 산일되지 않게 하겠습니다”하고 맹세를 합니다.

 

이후 사마천은 장군 이릉(李陵)이 흉노 정벌에 나섰다가 포위돼 항복한 사건을 논죄할 때 변호를 하다가 무제의 노염을 사서 궁형(宮刑)에 처하게 됩니다.

 

남자로서 가장 중요한 생식기를 잃는 형벌이었으니 그 참담함이 어떠했을까 짐작하고 남음이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곤란 속에서 사기 130권을 완성시키는, 인간 한계의 끝을 보여 주는 집념의 삶을 산 것입니다.

 

“출처진퇴(出處進退)의 분수를 알고 있는 내가 자결하지 않고 은인(隱忍)해 분토(糞土) 속의 처지를 참고 있는 것은, 내 문장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을까 애석(哀惜)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해설 편에 인용된 친구 임안(任安)에게 쓴 편지의 일부인데, 장부의 대의가 어떠한 것인가 일깨워주는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의 곡절을 거쳐 완성된 사기는 제왕의 이야기인 본기, 제도와 연혁의 기록인 표와 서, 제후국의 열국사인 세가, 역사에 영향을 끼친 유명인의 전기를 기록한 열전까지, 당시 중국천하의 지식을 망라한 백과전서식 사서로 모든 역사서의 기본이 됐다고 합니다.

 

이런 형식의 기록을 기전체라고 한다는군요.

 

역사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사마천이 창작한 기전체는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등에 이어지고, 우리의 삼국사기(三國史記)도 이에 따랐다고 하는데,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완성된 편년체와 함께 사서의 기본형식이라고 한다니 반드시 기억해둬야겠습니다.

 

서양은 ‘역사(Historiae)’를 쓴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로 부른다는데 동양의 역사서에 끼친 사마천의 공로도 그에 못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삼성출판사판 ‘사기열전’의 해설에서 ‘역사의 아버지 사마천’이라는 기록을 봤는데 사기 전권을 읽으면서 ‘과연 그렇겠다’하고 감탄을 했습니다.

 

특히 열전은 각기 일기일예(一技一藝)를 갖춘 인간군상의 삶을 기술한 것인데 예의염치가 있고 음모와 궤계가 있어 현대의 우리네 세류와 비교될 만했습니다.

 

역사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한 가지 사명에 일생을 바쳐 대작을 완성한 사마천의 삶을 본받는 의미에서라도 우리는 사기를 정독해야겠습니다.

 

한 인간이 최악의 상황에 들어 분발한 인간승리의 기록 사기는,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의미를 살필 수 있습니다.

 

“…요컨대 인간이란 심중에 답답한 응어리가 있으면 발산할 기회를 찾아 과거사를 돌이켜 미래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나도 불운을 만난 후 비재(非才)를 돌볼 겨를도 없이 천하에 흩어진 기록과 구문을 망라해 황제(黃帝)에서 지금까지 130권의 저술을 완성시킬 결심을 굳혔습니다. 다행히 저술이 완성돼 뜻있는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극형을 감수한 치욕이 씻길 것이니 일만 번 사형을 당한다 해도 유한이 될 게 없습니다.”

 

약간의 좌절에도 미리 포기해버리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사마천의 삶과 그의 유작 사기(史記)의 내용은 좋은 교훈이 될 듯해 여기에 권해 올리오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이번 여름방학을 이용해 필히 일독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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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07-19 15:2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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