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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진중기록 白眉, 난중일기 - 대한민국 11번째 세계기록유산등재·아시아 첫째
  • 기사등록 2013-07-05 17: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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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조윤장 편집국장 = 「진중기록 白眉, 난중일기」

 

책(冊)은 종이와 활자가 발명되면서 등장한 인류 최고의 유산이다.

 

사람들에게 전자책(e-book)이 언제쯤 대세로 굳어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이라고 전제할 수 있다.

 

그래서 종이에 명문화된 책(서적)으로 전해지는 기록 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다.

 

난중일기(亂中日記)와 새마을운동기록물이 2013년 6월 각각 세계기록유산(世界記錄遺産·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됐다.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기록유산 11개를 보유한 국가로 위상을 높였다.

 

1962년 12월20일 문화재(국보 제76호)로 지정된 난중일기는 조선시대 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임진왜란(이하 임란) 7년 기간에 쓴 진중일기다.

 

난중일기는 역사적 사실과 학술연구자료로 국내에서 높은 가치가 평가되는 기록이다.

 

특히 전쟁에서 지휘관이 직접 기록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물 정도다.

 

난중일기는 또 임란 당시 동아시아 열강들을 조명하는 역사적 중요성까지 비춰져 앞서 2012년 12월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가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예비권고 하기도 했다.

 

난중일기와 함께 등재된 새마을운동기록물은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대부터 주도한 지역사회개발운동을 담고 있다.

 

새마을운동(기록물)은 박정희 대통령 업적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UN이 인정한 빈곤퇴치 모범사례로 널리 평가되고 있다.

 

아무튼 대한민국은 1997년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을 필두로 직지심체요절·승정원일기·조선왕조의궤·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동의보감·일성록·5·18 민주화운동 기록물·난중일기·새마을운동기록물 등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아시아에서 첫 번째,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난중일기는 1592년(선조 25년) 임란이 일어난 다음달 5월1일부터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기 전 1598년 10월7일까지 기록이다.

 

친필 초고가 충남 아산 현충사에 보관돼 있다.

 

하지만 본래 이 일기는 어떤 이름도 붙어 있지 않았다.

 

1795년(정조 19년)에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이 집필되면서 편찬자가 난중일기로 명명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임란을 치르면서 엄격한 진중생활과 국정에 관한 솔직한 감회, 전투 뒤 비망록, 수군통제 비책 등을 다루고 있다.

 

나아가 가족·부하·장졸들의 내왕, 부하들의 상벌, 전황보고, 장계 및 서간문 초록 등이 실렸다.

 

조선사편수회는 1935년 난중일기를 조선사료총간 제6으로 임진장초(壬辰狀草)와 함께 영인·간행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보통 3년 주기로 이뤄진다.

 

1차년도 하반기에 신청대상 기록물을 선정하고, 2차년도에 신청서 작성 및 제출에 이어 3차년도 상반기에 등재를 결정한다.

 

난중일기는 왜적과 대치하는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매일을 정리한 것으로 이순신 장군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전장에서 군사를 지휘하는 리더십과 함께 가족을 걱정하는 인간적 면모가 투영돼 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에서 아들을 잃은 아픔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이순신과 고락을 나눴던 군사들을 향한 애정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진솔함이 표현되고 있다.

 

특히 어머니를 간절히 생각하는 대목은 가슴이 뭉클하다.

 

1593년 5월4일 “오늘 어머니 생신이지만 적을 토벌해야 하기 때문에 친히 찾아 뵙고 오래 사시기를 축수하는 술잔을 올리지 못하니 어찌 평생의 한(恨)이 아니겠는가”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1594년 5월5일“탐후선이 들어 와 어머님이 평안하신 줄 알다. 다행이다”고 기록했다.

 

1596년 8월12일“오래도록 어머님 안부를 듣지 못하니 답답하다”,“병드신 어머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종을 보내 어머니 안부를 물어 오게 했다”

 

“아내의 병이 매우 위중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랏일이 이러하니 다른 일은 생각할 수 없다.”(1594년 8월 30일),“아내의 병이 좀 나졌으나 원기가 약하다니 걱정스럽다.”(1594년 9월 2일),“아내는 불이 난 뒤로 크게 상처를 받았고 담과 기침이 심해졌다고 한다. 걱정이다.”(1595년 5월 16일)

 

난중일기는 한민족 역사상 가장 출중한 무장(武將)가운데 한사람, 이순신이 쓴 진중일기라는 점에서 귀한 가치를 갖는다.

 

마지막 기록 11월17일 일기는 “왜적 배 1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자 한산도 앞바다까지 추격했다. 왜적은 한산도 기슭을 타고 육지로 달아났다”고 쓰였다.

 

쉰 셋 천명으로 불꽃처럼 살다 생을 마친 이순신은 옥포대첩·사천포해전·당포해전·1차 당항포해전·안골포해전·부산포해전·명량대첩·노량해전 등을 승리로 이끌며 백척간두에 몰린 조선을 구했다.

 

구국의 영웅, 불멸의 이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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