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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열린책방> 책아저씨의 이야기 보따리

제6편-옛 서당 초등 교과서 ‘동몽선습(童蒙先習)’

 

▲  옛 서당에서 천자문을 익힌 학동들이 배웠던 초급 교재. 조선 현종 이후에는 왕세자 교육에도 사용됐다.

 

최근 인근 용인시 남사면에서 오시는 어르신 한 분께 동몽선습을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어르신은 1960년대 초 중학교 한문선생님을 하시고, 그 뒤 언론계에 계셨던 분인데 워낙 박학하셔서 여러 가지 교훈이 될 말씀을 많이 주셨습니다.

 

“선생이 되는 걸 ‘교편(敎鞭)을 잡는다’고 하지. 교편의 편은 鞭, 즉 ‘채찍 편(鞭)’이니 채찍을 들어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말하는데 교(敎)만 있고 편(鞭)은 없는 게 요즘의 교육이더군.”

 

말씀의 뜻이 재미있어서 경청(敬聽)하고 있으려니 때마침 오신 손님들도 함께 귀를 기울였습니다.

 

“옛적에 자식을 맡길 때는 ‘매를 들어서라도 내 아이를 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는 뜻으로 ‘지도편달(指導鞭撻)을 부탁드립니다’고 했지.

 

귀한 자식을 선생에게 부탁하는 학부모의 심정을 잘 대변한 말인데 요즘 학부모야 어디 그런가.”

 

어르신은 스승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사라진 교단을 서글퍼하시며 예절 교육이 안 된 탓이라고 하셨습니다.

 

“옛 초등교육기관 서당은 천자문으로 글자에 눈 뜨게 한 후 바로 동몽선습을 가르쳐서 사람의 도리를 알게 해 학문에 들어가게 했다”고 말씀하시며 “올바로 읽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동몽선습은 오륜(五倫)을 인륜의 근본으로 삼고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설명한 책인데 읽어 보았는가”라고요.

 

한글 전용 세대 초기에 옛 ‘국민학교’를 다녔던 저로서는 오륜의 뜻을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한자숙어를 익히는 기분으로 귀동냥한 몇 마디가 전부였던지라 알지 못하노라 하고 솔직히 말씀드렸더니 뜻밖에 귀한 책을 가져오셔서 강독을 해주셨습니다.

 

오래 된 한지로 엮은 고서라서 감히 받들기도 조심스러운 이백 수십 년 전의 필사본 동몽선습이었습니다.

 

제가 이 난에 동몽선습을 소개할 욕심을 품게 된 건 어르신께 배운 좋은 말씀들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옛 서당의 교육과정은 강독(講讀)과 제술(製述), 습자(習字)인데 동몽선습은 강독에 속한 초학교재로 천자문 다음에 배우는 책이었지. 재미있는 것은 교수법에 음독(音讀)을 권하는데 앉은 자세로 몸을 앞뒤로 흔들어 오랜 시간 글을 읽을 때의 운동부족 피로를 느끼지 않도록 배려를 했어.”

 

어르신께서 가르쳐주신 서당풍경입니다.

 

회초리를 든 무서운 훈장님 앞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며 운율에 맞춰 글을 읽었을 학동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 잠깐 웃었습니다.

 

동몽선습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 박세무가 편찬한 초급 교재로 동몽(童蒙)은 어린아이라는 뜻이고 선습(先習)은 먼저 익힌다는 뜻입니다.

 

천자문을 익히고 난 후 학동들이 배우는 초급 교재로,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五倫)과,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부터 명나라까지의 역사, 우리의 단군성조부터 조선왕조까지의 역사를 약술했습니다.

 

조선조 21대 임금 영조대왕이 친히 서문을 쓰시어(御製童蒙先習序) 널리 배포하게 했고 현종(顯宗) 이후에는 왕세자 교육에도 사용됐다고 합니다.

 

천지지간만물지중(天地之間萬物之衆)에 유인최귀(惟人最貴)니  

소귀호인자(所貴乎人者)는 이기유오륜야(以其有五倫也)니라.  

 

만물 중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을 귀히 여기는 이유는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시고(是故)로 맹자왈(孟子曰) 부자유친(父子有親)하며 군신유의(君臣有義)하며 부부유별(夫婦有別)하며 장유유서(長幼有序)하며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하시니 인이부지유오상(人而不知有五常)이면 즉기위금수(則其違禽獸) 불원의(不遠矣)리라.

 

이 때문에 맹자께서는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는 친애함이 있어야 하며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하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하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 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면서 오상(五常)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짐승과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연즉부자자효(然則父慈子孝)하며 군의신충(君義臣忠)하며 부화부순(夫和婦順)하며 형우제공(兄友弟恭)하며 붕우보인연후(朋友輔仁然後)에야 방가위지인의(方可謂之人矣)리라.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며 임금은 신하에게 의리를 지키고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하며 남편은 가족을 화합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형은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며 친구 사이에는 어짐(仁)을 나눈 후에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는 오륜편(五倫篇)의 시작 부분입니다.

 

금수와 구별되는 인간의 존엄성을 인륜의 근거로 시작해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의 핵심적인 구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하 오륜의 각 어의(語義)를 살핀 해설이 이어집니다마는 대강을 살핀 위의 문장만으로도 인륜지도는 충분히 설명이 된 느낌입니다.

 

어르신은 “부모와 자식은 서로 친애함이 있어 부모는 사랑으로 자식을 대해야 하며 자식은 부모의 뜻에 순종하여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뜻의 부자유친을 시작으로 한 오륜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학문하는 목적은 장차 고금의 사리(事理)를 통달해 마음 속에 보존하며 몸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니 학문하는 힘을 더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로 이어지는 학문의 목적을 또한 가르쳐주셨습니다.

 

“태극이 처음으로 판별돼 음과 양이 비로소 나눠진 시기로부터 오행이 서로 생성됨에 먼저 이(理)와 기(氣)가 있었다”의 천지개벽부터 명나라 말까지의 중국사, “동방에 처음에는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神人)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자 나라 사람들이 그의 아들을 임금으로 삼았다.

 

요임금과 동시대에 즉위해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했으니 이가 단군(檀君)이다”로 시작하는 우리 겨레의 고대사, “천명이 진정한 군주에게 돌아가니 명나라 태조 고황제가 국호를 조선이라고 고쳐 내리자 한양에 도읍을 정해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자손들이 끊임없이 계승해 거듭 빛내고……”로 끝맺는 조선의 개국까지 동몽선습에 기록된 역사를 가르침 주셨는데 여기에 모두 옮기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어르신은 “부차서(夫此書)는 즉동유소찬야(卽東儒所撰也)라 – 이 책은 우리나라 유학자가 저술한 것이다”를 시작으로 하는 영조대왕의 어제동몽선습서(御製童蒙先習序)의 “내가 이 책에서 성(誠)과 경(敬) 두 글자를 가지고 책의 맨 앞에 놓으니, 성(誠)을 이룩한 뒤에야 책에 매인 나의 병통을 면할 수 있고, 경(敬)을 유지한 뒤에야 삼가 예행(體行)하고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이 어찌 이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와, “요즘의 동학(童學)들이 대략이나마 여러 가지 명칭과 의미가 구분됨을 알아서 결국 귀결할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반드시 이 책에서 얻은 것일 터이니 그 공로가 어찌 크지 않다 하겠는가!”하신 송시열 선생의 발문(跋文)까지 일일이 낭독해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어르신께 동몽선습을 가르침 받으며 인간의 근본도리와 그 실천을 강조하는 교육목적을 담은 책의 내용에 감탄했습니다.

 

오륜, 특히 효(孝)를 통해 모든 도리를 바로 잡고 그 도리를 마음으로 느끼고 실천함으로써 학문의 근본목적인 자기 수양에 도움이 되도록 목표를 가진 목적성 편집의 교양서를 배웠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학문이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된 시대에 효도니 예절이니 찾는 것은 고루한 느낌이지만 치열한 경쟁사회의 일원으로 자칫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나고 삶의 진정한 목표를 상실해 방황하기 쉬운 젊은이들에게 윤리적 신념을 갖게 하고 인간답게 사는 길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는 책으로 감히 동몽선습을 권해 올립니다.

 

끝으로 어르신께 배운 장유유서의 일례를 옮겨 배운 바 지식자랑을 하는 것으로 책 소개의 말미로 삼겠습니다.

 

“자신보다 20세 위를 존자(尊者)라 하고 10세 위를 장자(長者), 10세 이내를 적자(敵者), 10세 아래를 소자(小者), 20세 아래를 유자(幼者)라 하여 각기 지켜야 할 법도가 정해져 있었다. 존장을 대하는 예가 이 같이 엄격했으니, 하물며 스승을 대함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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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06-21 11: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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