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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 전하는 신비한 옛 이야기들(13) - 이영주 기자, 구비전승 17번째 ‘신립장군 지략’
  • 기사등록 2013-06-14 1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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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조선 중기 신립(1546~1592) 장군은 선조 16년(1583) 북방에 침입한 여진족 나탕개를 격퇴시켰다.

 

22세 당시 1567년(선조 즉위)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전라·경상의 3도 순변사로 임명돼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적군과 대결했다.

 

이 싸움에서 패하자 부하 김여물과 남한강물에 투신자결했다.

 

이 장군과 관련한 이야기가 오산에 전한다.

 

▲ 충주 탄금대 신립장군 동상.

 

 

■ 신립장군의 지략

 

신립장군이 평택으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 집에서 하루저녁 자게 됐다.

 

그 집은 형편이 어려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집주인은 사정이 이러하니 건너 큰 대갓집에 가서 주무시라고 했다.

 

신립장군은 그 대갓집을 찾아갔다.

 

대갓집 주인에게 장기를 둘 줄 아느냐 물으니 그는 조금 둔다고 했다.

 

신립장군은 내기 장기를 권했고 장군이 이겼다.

 

신립장군은 다른 재물은 필요 없고 박을 심을 수 있게 토지를 좀 빌려 달라고 했고 집주인은 그러겠노라고 했다.

 

장군은 수천 평의 땅에 박을 심었고 방대한 박을 거둬 들였다.

 

그러고는 바가지를 만들고 검은 칠을 했다.

 

장군은 장정이 간신히 들 수 있을 정도의 무거운 철모도 수십 개 만들어 해변에 놓았다.

 

그 때는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왜국은 조선 상황을 염탐할 군사를 미리 보냈다.

 

그렇게 조선에 당도한 왜군들이 평택 쪽의 해변을 통해 들어오는데 철모가 놓여있었다.

 

철모를 들어보려 하니 너무 무거워 온힘을 다 해야 간신히 들 수 있을 정도였다.

 

‘조선의 군사들은 얼마나 힘이 세기에 이렇게 무거운 철모를 쓸까?’라는 생각에 왜군은 적잖이 놀랐다.

 

자세히 보니 해변에 수천 개의 철모가 놓여 있었다.

 

지레 겁을 먹은 왜군은 염탐할 엄두도 못 내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제보자 : 부산동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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