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hong 기자
[데스크 칼럼] 조윤장 편집국장 = 「라디오 DJ 전설, 이종환」
‘밤의 라디오’를 풍미했던 큰 별이 졌다.
이제는 내 추억의 한 페이지에서 그리워 해야 할 사람으로 남은 그의 이야기다.
특유의 코맹맹이 저음으로 ‘밤의 라디오’를 풍미했던 우리나라 DJ 1세대 이종환씨가 5월30일 지병(폐암)으로 타계했다.
1937년생이니 향년 76세다.
이종환은 경복고와 중앙대를 졸업한 뒤 음악다방‘디네쉐’에서 DJ(Disc Jockey)로 활동하다 1964년 MBC라디오 PD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그가 DJ 1세대로 명성을 날릴 수 있었던 건 '라디오(Radio)' 매체다.
옛 어른들은 이 처럼 신통방통한 물건(?)을 가리켜 소리통이나 소리상자로 부르며 요술을 부린다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직사각형 모형의 작은 상자(통) 안에서 별의별 소리가 흘러 나왔으니 어찌 요술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라디오는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1900년대 초에 출현했다.
탄생은 선(線)에 의지하지 않은 무선전신이 개발되면서다.
1890년대 후반~1910년대까지 무선기술을 바탕으로 음성과 음악을 다수에게 전달하기 위한 실험들이 시도됐다.
그 결과 무선(wireless)은 라디오(Radio)를 탄생시키는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우리나라 라디오 방송 역사는 1926년 일제강점기 당시 식민정책강화수단으로 경성방송국이 개국되면서 호출부호 'JODK'로 첫 방송이 시작됐다.
그 뒤 1932년 조선방송협회로 개편, 1945년 광복까지 전국에 17개 지방방송국이 개설된다.
광복전까지 우리말과 일본어 방송이 별도로 편성·송출됐다.
우리나라 방송이 고유의 호출부호로 국적을 회복한 때는 1947년 9월3일로 기록된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받은 호출부호‘HLKA’로 방송하면서 이를 우리나라 방송의 국적회복일로 삼아 1947년 9월3일을 ‘방송의 날’로 정했다.
이종환은 스물일곱 나이에 라디오와 인연을 맺고 수십년을 함께 했다.
그렇기에 그의 이름 석자를 떠올리면 바로‘라디오 DJ’라는 등식이 연상된다.
그는 1970년대 통기타 음악의 산실 '쉘부르'를 탄생시킨 산파이자 주역이다.
1970년대 ‘별이 빛나는 밤에’, 1980년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등 당대 최고 인기프로그램에서 명 DJ로 활약했다.
DJ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디스코텍 등에서 음악이나 세상사 이야기를 곁들여 음악(음반)을 틀어 주는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1989년 돌연 미국행을 택했다.
미주 한인방송 사장을 맡았던 그는 1992년 귀국, MBC FM ‘이종환의 밤으로의 초대’로 방송에 복귀했다.
이어 ‘이종환·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이종환의 음악살롱’등으로 옛 명성을 되찾았다.
이종환은 1996년 무려 20년 동안 MBC 라디오를 진행한 DJ에게 부여하는 ‘골든마우스’상을 최초로 수상했다.
해박한 음악지식과 소탈하고 특유한 코맹맹이 입담으로 수많은 애청자들을 휘어 잡았다.
특히 1995년~2002년까지 최고 파트너 최유라씨와 함께 진행한‘지금은 라디오 시대’는 타의추종을 불허한 인기프로그램으로 평가된다.
최유라씨는 지금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파트너 가수 조영남)
좀 더 쉘부르 이야기를 짚어 본다.
음악감상실 쉘부르를 만든 이종환은 국내 대중음악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1973년 남성듀오 쉐그린(이태원·전언수)과 함께 서울 종로 2가 쉘부르에서 가난한 무명가수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경제적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이종환 사단’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이들의 대장으로 불렸고 어니언스, 남궁옥분, 쉐그린, 강승모, 채은옥, 김세화, 강은철 등 인기가수들을 배출시켰다.
또한 오산 출신 가수 이장희는 1971년 이종환 권유로 1집 음반‘겨울이야기’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에 나서 줄곧 인기가도를 달렸다.
2000년대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던 이종환은 그러나 돌출행동과 음주방송 파문으로 마이크를 놓았고, 2005년 4월 TBS FM ‘이종환의 마이웨이’로 복귀했지만 2012년 11월 건강을 이유로 사실상 수십년 방송인생에 방점을 찍었다.
사적으로 필자도 1980년대 초 입대를 앞두고 잠시 음악다방에서 DJ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문화공간이 별로 없었던 그 시절, 음악다방은 청춘남여들에게 유일한 안식처 같은 존재였다.
230원 짜리 커피값만 내면 하루종일까지도 음악다방에 죽치고 앉아 폼 잡을 수 있었으니 어디 그 만한 쉼터가 또 있었을까..
한 해 두 해 점점 나이 들수록 추억이 그리워진다.
모르긴 해도 이종환, 그가 없는 라디오는 전설의 DJ 1세대를 떠나 보낸 빈자리로 오래도록 가슴 한 켠이 휑하게 그리울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좋아했던 DJ였는데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