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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이종철 대한민국 오지연구소 소장이 소개하는 오지마을 여행, 세 번째 코너.

 

경상남도 산청 오봉마을이다.

 

분지같은 마을을 양 쪽에서 계곡이 감싸 시간을 잊은 듯한 그 마을 속으로 초대한다.

 

▲ 경상남도 산청 오봉마을 입구.

 

<시간과 무아지경의 경계 - 오봉마을>

 

경상남도 산청 오봉마을은 출발지 오산에서 무려 300km나 되는 곳이다.

 

지리산자락 깊숙이 숨은 이 마을은 외지인에게 낯선 미지의 마을이기에 아직도 원시의 멋을 볼 수 있다.

 

4~5km의 정연하고도 맛깔스런 계곡소리를 들으며 작은 길을 따라 가다보면 해발 600여m의 가파른 진입로가 나온다.

 

이 곳은 힘이 넘쳐나는 할리데이비슨(오토바이)의 엔진도 꺼질 듯한 굉음을 간간히 토해낸다.

 

며칠 전 비 온 뒤 간간이 소나기가 내리치는 계곡은 성난 야수가 집을 통째로 삼키는 듯 굉음을 자아낸다.

 

그러면서 승용차만한 암석들을 넘나드는 풍광은 수몰 직전의 바위가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 마을 입구 계곡으로 시원스레 물이 흐른다.

 

십수 년을 버텨 온 크고 작은 암석들은 저마다의 집터를 지켜내기 위해 태고의 자연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하늘이 간신히 보이는 양쪽의 밀림사이로 새로 생겨난 작은 폭포가 인사를 건넨다.

 

다섯 봉우리 사이에 깊숙하고 높게 숨은 오봉마을은 나그네의 어설픈 방문을 조롱하는 듯 필자를 굽어보고 있었다.

 

오봉마을은 깔때기 모양의 작고 비탈진 분지에 양쪽으로 감아 나오는 계곡을 끼며 두 계곡이 마을을 지키는 형상이다.

 

이는 마치 두 개의 자연마을이 동과 서로 갈라 진 듯 색다른 묘미가 물씬 묻어난다.

 

마을에 간간히 보이는 텃밭은 대략 1~3평 정도로 흡사 도시민이 옥상에 만든 이동식 텃밭마냥 앙증맞은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렇게 마을 자급에 필요한 고추, 가지 등의 채소를 먹을 수 있는 만큼 키우는 것이었다.

 

9월말이 지나면 고추에 서리가 내려 고사가 되고 비탈진 산자락은 각종 약초와 수많은 나비 등 곤충이 들새의 합창속에 녹아내리는 마을은 신비와 경외가 어울린 이국적인 맛까지 느껴진다.

 

이채로운 건 집집마다 10여 개씩 놓인 LP가스통이었다.

 

이 오지마을은 긴 겨울 내내 눈이 쌓이면 모든 교통수단이 멈춰진다.

 

눈이 녹는 늦 봄까지 취사할 가스는 항시 대비해 놓아야 하기에 벌어진 진풍경이다.

 

여름철은 인근에서 피서객이 간간히 찾고 봄·가을에는 등산객과 약초 채취꾼이 들를 뿐 마을은 외지인에게 특급 비밀을 지키고 있는 하나의 고성같다.

 

원주민은 2가구뿐이고 외지에서 들어 와 눌러 살는 가구 몇 채가 이마를 서로 맞대고 있다.

 

마을 위쪽 끝자락에서 사는 토박이 민대호씨 부부는 초등학생 아들을 산청의 형님 댁에 의탁시키고 1년 전까지 이장일을 보면서 이 곳을 지키는  수문장이다.

 

두 달여를 손수 지었다는 가옥은 외벽에 황토를 바르고 내부는 방수포와 통대나무를 잇대었다.

 

지붕은 흙 위에 슬레이트를 깔았다.

 

천정까지 사면이 굵기가 거의 같은 통대나무 집이었다.

 

집안은 밀림지대 원시인의 원두막처럼 시원하고 상쾌해 한번 발을 들이면 나가기가 쉽지 않게 만들 정도였다.

 

마루바닥 나무는 사람 때가 묻어 윤기가 자르르 한데다 자연히 닳아 미세한 홈까지 파져있었다.

 

흡사 손으로 마름질한 자연적 조각품인 양 고대 농경사회의 유물을 보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그렇게 25년을 견뎌낸 품격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뽐내고 있었다.

 

이 곳의 시계는 의미가 없다.

 

오늘이 며칠이고 무슨 요일인지, 내가 언제 면도를 했는지, 배고프면 밥 먹고, 일하다 졸리면 잠자고, 산에 올라가 경치가 좋으면 하늘을 베게 삼아 잠드는 일상이 원시의 생태가 반복되는 무아지경의 별세이다.

 

윙윙대는 벌소리와 고요 속의 새소리가 장쾌한 물소리에 뒤섞여 한편의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는 것 같다.

 

▲ 오봉마을 민대호 씨의 집. 사방이 같은 굵기의 통나무로 돼 있다.

 

이럴 때면 나도 오지에 익숙한 토박이 원주민이 된 듯한 편안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계곡의 물을 그대로 방향만 바꿔 끌어들여 365일 콸콸 넘쳐나는 물길식수는 자연이 잠시 쉬어가는 자연수로써 이제까지 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다니 얼마나 수량이 풍부한 마을 터인가.

 

민대호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한 겨울에는 얼음을 깨야 물을 먹을 수 있고 그대로 놔두면 지가 알아서 녹지요.”

 

전기가 없던 12년 전만 해도 인근 화계장을 보러 가면 새벽에 나가 별을 보고 돌아 왔다는 그는 불편하긴 해도 전기없던 시절이 좋았단다.

 

마침 점심 때가 돼 민씨 부인이 내놓은 점심은 약초무침 한 가지에 소주 한 잔이 어울린 수제비였다.

 

필자가 5살 때 어머님이 만드신 수제비와 똑같은.

 

▲ 민대호 씨 부인이 내온 수제비.

 

양파와 파, 마늘 약간. 거기에 묵은 간장으로만 간을 한 아득한 옛날의 수제비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맛은 무의미하고 약간 씁쓰름하다.

 

조미료나 그 흔한 멸치 한 마리 없이 끓여 낸 것이니 당연할 수 밖에..

 

그러나 그 속에 묻어나는 자연의 순수한 맛은 60여 년의 전 옛날로 되돌아 가게 만드는 타임머신이었다.

 

늦게 만나 가정을 꾸렸다는 부인은 긴 머리를 뒤로 빗어 내린 순수한 농촌 아낙의 모습이었다.

 

근심걱정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태고의 미소 속에 감춰진 소복한 아낙의 자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평안과 친근감이 솟아나게 했다.

 

문명이 가까워질수록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이 많아지며 사람의 편안함과 욕심도 거기에 따라 매달리게 된다.

 

바로 인간사의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 내재된 현대 생활이 아닐까.

 

안방은 대나무 가지에 걸어 놓은 옷들이 옷걸이를 대신하고, 옆은 수시로 채집한 약초자루가 대나무에 걸려 있다.

 

그러한 세간은 아무 때고 갈 길 찾아 떠다니는 몽골초원의 유목민 가옥을 보는 듯 더도 덜도 아닌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만이 나그네를 반긴다.

 

무쇠솥을 걸어놓은 아궁이에 일 년 내내 풍족한 나무로 아무 때나 데울 수 있는 구들방이 침상이다.

 

창문을 열면 신선한 공기가 심폐를 가득 채우니 이 얼마나 원시와 낭만이 존재하는 이상향인가.

 

거실마루 한켠에는 족히 200여 통이 넘어 보이는 약초술이 즐비해 꼭 중국 약초 원산지의 한약방 같은 느낌을 준다.

 

민대호씨는 있는 대로 담아 놓으면 지나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사간다는 약초채집, 버섯채취, 토종벌 농사로 일 년 365일 자동으로 바쁜 줄 모르고 살아가기에 활력이 넘쳐 난단다.

 

▲ 민대호 씨가 약초 등으로 담근 술이 즐비하다.

 

“100통 벌을 키우면 200대 정도 꿀이 나오는데 1대당 5만 원이니 토종꿀만으로도 1년에 천 만원을 자연이 줍니다.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 말은 자연이 얼마나 순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복된 선물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1달에 50만원이면 충분히 먹고 쓴다는 민대호씨.

 

집 주위의 모든 풀이 전부 약초요, 식채소이고 돌배와 개복숭아까지 특식을 더하니 부족함은 꿈 속에서도 느껴 본 적이 없단다.

 

▲ 민대호 씨의 집 옆 '집채만한 바위'.

 

민대호씨 집 옆 집채만한 바위 위에 지은 누각을 찾으니 양동이만한 하늘이 하얀 구름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끝없이 내려다 보이는 오봉계곡의 물줄기를 바라보노라면 절로 깊은 잠이 밀려오는 듯 하다.

 

“밤중에 가끔 여기서 잠들지요.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면 찬란한 유성이 휘황하게 밤하늘을 가릅니다. 그 모습은 모든 것을 잊게 하지요.”

 

민대호씨가 말했다.

 

한밤의 하늘은 별이 더 많은 은하수 밭이요, 반짝이는 반딧불이와 대화를 나누노라면 눈과 마음까지 맑아지고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유성은 현란한 불꽃놀이가 초라해 보이게 한다.

 

▲ 바위 위 누각.

 

하기사 잊을 것도 없다는 민대호 씨는 행복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 차 흐른다.

 

“도사같이 사시니 얼마나 편하십니까?”

 

그에게 물었다.

 

“제가 도사가 아니라 서울과 대도시에 사시는 분들이 도사입니다.”

 

그가 답했다.

 

해가 가질 않는다.

 

허나 여기에 진실이 숨어 있었다.

 

대도시에서 공해와 소음과 싸우고 생존과 일에 하루가 모자라는 도시.

 

그 경쟁의 사활터에서 피나는 인간사에 뒤얽힌 도시생활을 견디고 익숙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진짜 도사란다.

 

그는 몇 년 전 먼 친척의 일을 보려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 다녀왔다.

 

그 때 민씨는 눈이 쓰리다 못해 아프고 코끝은 새카만 먹칠이 묻어나고 머릿속이 어지러워 한참을 몸살에 고생했다고 한다.

 

“지리산이 정원이고 자연에 순응하며 주는 만큼 먹고 사는 만큼 사는 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민씨의 눈가에 순간 이상향을 가득 안은 편안한 모습이 스쳐간다.

 

마을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옆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 밀림 속에 검고 짙게 드리운 어둠은 길고 긴 동굴 입구같이 보였다.

 

▲ 오봉마을 입구 산청함양사건 위령비.

 

그를 보며 필자는 자연의 경외심에 빠져 들었다.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계곡물은 흡사 필자를 뒤따르며 배웅을 하는 듯 다시 만나 어울리자는 메아리로 쫓아오고 있었다.

 

다시 시간을 내 며칠 밤낮을 어울리자는 무언의 약속과 함께.

 

 

*산청·함양 양민학살사건 (山清·咸陽良民虐殺事件) : 1951년 2월7일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 주민들이 공비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군에게 학살당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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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05-23 14: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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