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hong 기자
<기고> 김종훈 오산침례교회 담임목사(목회학 박사·명지대학 출강·세교복지재단 대표이사) = 「더 나은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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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훈 오산침례교회 담임목사. |
‘말(言)’의 위력은 새삼 재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지도자 말은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느냐, 분열시키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리더십 덕목이다.
따라서 말을 잘 할 필요는 없다고 해도 잘 말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말 보다 더 큰 위력은 ‘웃음’에 있다.
유머(humor)다.
윈스턴 처칠의 리더십도 사실 이 것 이었다.
물론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말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웃음과 유머 역시 명성이 자자했다.
한 번은 강연을 하러 단상에 오르다가 육중한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걸려 넘어졌다.
그러자 숨죽이며 그의 입장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처칠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없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저 때문에 웃을 수 있다면 저는 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더 큰 박수로 화답했다.
여유로운 웃음의 리더십이 세기의 영웅을 만든 셈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웃고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웃는 인생이어야 복이 온다.
그누가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겠는가.
낯짝과 낙하산은 무조건 펴져야 하고, 웃을 자신이 없으면 가게 문도 열지 말아야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웃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 웃음 보다 더 큰 위력은‘눈물’에 있다.
특히 리더의 눈물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적신다.
분노를 삭히게 하고, 원망을 내려놓게 하며, 리더와 팔로워(follower-추종자·지지자)를 하나로 묶는다.
뜻밖이지만 팔로워들은 리더의 강인함 보다 부드러움을 더 원한다.
지성적이기 보다 감성적이기를 더 원한다.
신적(神的)이기 보다 인간적(人間的)이기를 더 원한다.
리더의 눈물이 그들의 원함을 채운다.
그러므로 지도자도 울 땐 울어야 한다.
눈물은 연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공동체성을 더 강화시키는 아주 좋은 명약이다.
요즘 우리 교회안에도 예전 보다 눈물이 많아진 것 같아 감사하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교우들의 눈망울 마다 감동과 치유와 회개의 눈물이 자주 맺힌다.
이는 나부터도 그러하다.
나 역시 왜 이렇게 요즘 눈물이 자주 나는지 모르겠다.
기도를 할라치면 그들의 고단한 삶의 무게가 내 기도를 타고 흐른다.
말씀을 전할 때 그들의 눈앞에서 내 눈물을 참는 일이 새로운 숙제가 됐다.
게다가 찬양의 곡조와 가사까지도 내 눈물을 훔치게 한다.
난 그게 너무 감사하다.
그러므로 누구든 자주 우는 게 좋겠다.
눈이 울어야 몸이 울지 않는다.
눈물은 우리의 복잡한 감정을 리셋(reset)시키는 창조주의 고마운 선물이며, 압력밥솥의 스팀분출이 밥솥의 폭발을 막듯 눈물은 마음의 폭발을 막는 진정제다.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어 똥구멍에 털이 날지라도 그게 좋은 거라면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이 눈물 보다 더 큰 위력은 ‘행동’이다.
직접 솔선수범하는데 있다.
행동의 영향력은 말 보다 웃음 보다 눈물 보다 강하다.
감동 역시 말 보다 웃음 보다 눈물 보다 강하다.
그러므로 리더는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최고 지도력도 거기서 나온다.
보고 배우게 하는 것 보다 더 큰 가르침은 없다.
기독교인들은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
왜 그럴까?
그 분은 성서 이야기 속에만 계시지 않고 내 인생과 역사에 구체적으로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또 인류의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에 달리셨다.
행동으로 보이신 그 사랑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경배하고 찬양하며 배우고 본받으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