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hong 기자
<칼럼> 이종철 오산시문화관광해설사 = 효(孝)는 애정·경건·효심을 의미한다.
영어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경건함’이란 뜻의 ‘Filial piety(필리얼 파이어티)’로 표기한다.
한자 효(孝)는 늙을 로(老)자 아래 자식 자(子)를 써 자식이 노인을 떠받드는 모양이다.
예부터 우리민족은 민속신앙에 뿌리를 둔 조상숭배와 경로사상이 뿌리 깊게 정착됐다.
효도는 크게 양지(養志)와 양구체(養口體)로 나뉜다.
전자(前者)는 부모님을 받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정신적 효도다.
후자(後者)는 부모님의 육신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효도다.
이처럼 우리민족은 효도를 생의 최우선이면서 끝까지 다하는 덕목으로 여겨왔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수직적 효도는 물론이요 가정교육과 일반교육에서 효는 모든 범주에서 우선돼 온 의무 내지는 관습에 따른 생활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상들이 해왔던 효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윤리실천과 예절, 부모에게 순종과 복종·병간호(부모가 병석에 누우시면 대·소변도 기꺼이 받아냈다), 신체기부(부모가 드실 것이 없으면 생머리를 잘라 팔아 곡식을 마련하거나 자신의 허벅지살을 고기로 내어드리기도 했다), 시묘살이(부모가 돌아가시면 하던 일이나 관직을 접고 3년간 묘지 옆에 움막을 짓고 정성으로 공양을 드리는 생활사가 있었다) 등이다.
이 같이 우리민족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신체의 모발과 피부는 부모님에게 받은 것)이라는 가르침과 같이 부모에게 드리는 효를 모든 덕목의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또 이를 칭송하기 위해 향리마다 효자비, 효부비, 정려각(정려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을 세워 기념하는 것) 등을 권장했다.
이에 반하는 불효자는 모든 사람의 따가운 시선과 함께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시대가 이어져 왔었다.
일찍이 공자는 “사람에게는 3천 가지의 죄가 있는데 그 가운데 불효의 죄가 가장 크다”고 했다.
유교의 효경은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에 업고 수미산을 10만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 했다.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혹은 고대 인도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 세상은 아홉 산과 여덟 바다가 겹쳐져 있는데 그 중 가장 높은 산.
이와 함께 어린나이에 부친 사도세자의 죽음을 지켜 본 정조대왕도 즉위한 뒤 못다한 아버지를 향한 효도를 절감해 장조로 추존했다.
또 융릉에 모시고 1년에 두 차례 1천여 명의 궁궐 식구를 대동한 화산능행차에 나서 아버지에게 극진한 효도를다하며 만백성이 이를 윤리의 근본으로 따르도록 효행정치를 펼쳤다.
더불어 용주사에 고려시대 범종을 하사하면서 ‘불설부모 은중경판(佛設父母 恩重經板-부모의 은혜가 매우 위대하며, 그 은혜를 갚는 방법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불교 경전. 조선 정조가 억울한 참화로 돌아가신 아버지 장헌세자를 향한 효심으로 새겼으며 모두 84판)’을 내려 백성들에게 효심을 10가지로 요약해 가르쳤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머니가 가슴에 품고 지켜준 은혜, 해산의 고통을 이기신 은혜,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어 먹이시는 은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시는 은혜, 젖을 먹여 키워주신 은혜, 손발이 닳도록 깨끗이 씻어주시는 은혜, 먼 길 떠남을 걱정하시는 은혜, 자식을 위해 나쁜 일을 감당하시는 은혜,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
과거 부모님은 쌀이 떨어져도 자식만큼은 굶기려 하지 않았다.
또 3첩 반상(밥·국·김치·나물)이 전부인 서민들의 밥상에서 항상 남편과 자식을 먼저 먹게 하고 자신은 나머지 밥, 찬과 누룽지로 허기를 달랬다.
이 처럼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에 모든 열정을 기울여가며 지극정성을 보이신 부모이시다.
이는 현재도 대개의 부모가 고스란히 물려받아 살아가는 우리의 덕목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멀티미디어 시대라 불리는 신세대들의 효는 어떠할까.
신세대는 부모와 자식 간에 격의가 없고, 자식이 부모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성장한다.
이런 이유로 심지어 ‘마마보이, 파파보이’란 말도 생겨났다.
부모가 자식에게 올인하는 풍토속에서 인스턴트 식품과 빠르고 간편한 의식구조가 팽배해졌다.
이 와중에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과 의존적인 울타리에서 얼마나 많은 신세대가 커가고 있는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극심한 경쟁력이 요구돼 히스테리가 일어나는 사회구조에서 더이상 과거의 효도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현대사회는 모든 젊은 층을 옭아매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과거의 순수한 효도가 생성될지는 희박한 실정이다.
일단 ‘좋은 대학에 보내도록 잘 키우자’는 생각을 가지고 성장시킨 뒤 결혼까지 하고 나면 그때부터 자식은 더욱 바빠진다.
처자식 봉양하랴, 자녀교육, 직장의 스트레스는 물론이며 현대 경쟁생활에 우뚝 서자니 주변이 온통 지뢰밭이나 다름없다고 느끼며 지내게 된다.
30~40대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머리는 백발이 되며 수입은 한정된 반면 씀씀이는 늘어만 간다.
게다가 ‘오륙도-사오정-삼팔선-이태백’으로 이어지는 실직의 두려움 속에세 우리의 2세는 오늘도 숨막히게 허덕이며 유영하고 있다.
이러한 세파속 자녀에게 옛날의 근본적인 효도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현대인은 폭넓은 인간관계와 경력 쌓기, 평가와 보상에 민감하며 새로움에 강한 적응력을 가져야 하고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하는 개인생활을 중시하는 생의 기로에서 살아야만 한다.
잠시 여기에서 재밌는 신조어들을 토대로 현대인의 의식구조를 살펴보자.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참고 참으면 참나무 된다, 포기하면 편하다, 아니면 말고, 나도 나지만 너도 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사람을 얕본다, 부모에게 욕하는 건 참아도 나에게 욕하는 건 못 참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 효도는 셀프다, 고생 끝에 골병난다, 성공은 1%의 재능과 99%의 빽(뒷배경)이다.’
어느덧 현대인 사이에는 이러한 개념이 팽배해 졌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하나 있다.
‘효도는 셀프’라는 말이다. 이 말은 심도있게 헤아려 보아야 될 듯하다.
현대사회에서 부모가 중병으로 드러누우면 자식이 과연 병간호를 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한 두 번 눈도장 찍으면 다행이요, 그나마 돈이 없으면 병마와 함께 독방에서 혼자 놀아야 한다.
돈이있어 요양원에라도 가면 그 부모는 복 받은 사람이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가 대소변을 부탁하려면 오로지 아내 밖에 없다.
어떤 자식이나 며느리가 냄새 지독한 부모님의 대소변을 받아 줄 것인가.
‘효도는 셀프’라는 말의 참뜻은 이 대목에서 나온다.
부모는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부모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
헌데 나이 들면서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는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평소에 운동과 바른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지키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그 다음 부모는 늙어서도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자식에게 효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가끔 들르는 자식과 며느리, 손주에게 용돈이라도 듬뿍 줄 정도가 돼야 한다.
또 필요할 때 자식에게 전세거리라도 보태주는 건강하고 돈있는 부모만이 공경을 받는 세대가 됐다.
즉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효도를 기대하기에 앞서 효도를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후준비를 철저히 해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건강한 부모만이 현시대에서는 늙어서까지도 존경과 대우받는 노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주변에서 부모를 망치는 불효가 얼마나 수없이 보여지는가.
길거리나 빈집에 방치하며, 동남아 여행에서 의식적으로 방치, 외국이민을 강요해 조국에 남은 재산을 정리한 뒤 그대로 천덕꾸러기로 냉대하는 자식들에 관한 기사도 간혹 오르내린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신세대의 효도는 옛날의 궤를 벗어나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돼야 할 것이다.
모든 부모가 바라는 효도는 부모나 신세대 자식이 공감 가능한 선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는 신세대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당연한 귀결이 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신대대가 기본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효도는 다음과 같다.
‘전화·메시지·이메일·편지로 자주 연락하기, 부모님의 검진결과에 적절한 대처법 제공하기, 부모님 건강계획서 짜주기, 각종 건강정보 드리기, 자신의 자녀에게 할아버지·할머니께 자주 연락 및 존경심 유도하기, 부모와 동행여행·취미 생활·외식, 배우자의 부모도 자기 부모라는 생각 갖기, 부모의 친구도 공경하기, 사랑한다는 말 자주하기, 말동무 돼드리기, 건전한 사회인으로 인정받기’ 등이다.
만약 아직 어린 자녀라면 다음을 실천하면 좋을 것이다.
‘집안일 돕기, 열공하기, 말썽 안 피우기, 스스로 일어나기, 어깨 주물러드리기, 방청소 하기, 도둑질 안 하기, 학원 땡땡이 안 치기, 학교에서 전화 안 오게 하기, 엄마 말씀 잘 듣기, 친구랑 안 싸우기’ 등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효도란 작은 것 부터, 사소한 것 부터, 할 수 있는 것에서 마음으로 진정 우러나와 행하는 것이 모두가 공감하는 효도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하다.
좋은 글 잘 보앗습니다. 대단하십니다. 허나 아무리 좋은 옥고라고 해도 오산문화-오산문화원 간-에 썼던 글을 다시 쓰면 안됩니다. 좁은 동네에 같은 동일한 글을 내시면 아니, 아니되오
이종철!님 감사합니다.저에 있어 효란 '진심으로 부모님을 위하는 것'입니다.4년전 홀로 되신 부친께 구정 명절에 용돈100만원과 함께 푸켓 여행을 선물 드렸습니다.효란 늘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다음이란 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행복한 명절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