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hong 기자
<기고> 유태현 오산시 UN군 초전기념관 초대관장 = UN군 초전기념관 개관을 앞두고
▲ 유태현 오산시 UN군 초전기념관 초대관장.
푸른 하늘 아래 하얗게 눈덮힌 산과 들, 활기찬 도시에서 사람들이 평화롭게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일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60년 전 북한공산주의자들이 무력으로 도발한 6·25전쟁, 한민족의 비극을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피·아간 3년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6·25전쟁, 그 복판에 오산에서 치러진 ‘죽미령 전투’를 조명해볼까 합니다.
1950년 7월5일, 이 곳 오산 죽미령에서 UN군 일원으로 참전한 스미스 미육군 특수임무부대는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적군과 최초로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 2013년 3월 개관을 앞둔 UN군 초전기념관.( 이는 오산시의 정체성과 역사의식 고취에 일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휘관 찰스 브레드 스미스(Charles B. Smith) 중령의 이름을 딴 특수임무부대는 미 제24보병사단 제21보병연대 제1대대와 제52포병대대 용사 540명으로 구성됐습니다.
반세기 세월이 훨씬 흘러간 그 때 오산 죽미령 능선에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동이 틀무렵 북한군 전차, 보병부대와 치열하게 교전을 했습니다.
병력과 화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북한군 진군을 지연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은 전차연대를 앞세워 공격하면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6시간15분의 전투를 끝으로 퇴각했습니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소련제 T-34전차를 앞세워 진군하는 북한군을 제압하지 못했으나, 푸른눈 장병들은 이 땅의 자유수호를 위해 용맹스러운 임전태세로 쉽게 물러서지 않고 맞섰습니다.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후속병력들이 방어선을 구축, 반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줬습니다.
죽미령 전투 전사자들 가운데 소년들도 있었습니다.
울프 형제는 겨우 16살, 18살 밖에 안됐습니다.
이들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에서 가장 어렸으며, 각각 14살, 16살에 군에 입대했습니다.
울프 형제 아버지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할아버지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무렵 6·25전쟁에 참전하게 됐던 것이지요.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면입니다.
학업에 전념해야 했을 어린 나이에 자유와 평화를 위해 머나먼 이국 전장에 몸을 던진 울프 형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60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면서 대한민국을 지켰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곳 죽미령은 미군의 첫 참전 지역으로 역사적 상징의 공간이며 이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은 UN군 특화지구조성사업을 목적으로 건립됐습니다.
UN군 초전기념관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호국안보의식고취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것입니다.
2013년 3월 UN군 초전기념관 개관을 앞두고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들이 역사에 남긴 숭고한 희생에 삼가 머리를 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