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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나이 60에 할리 데이비슨(Harley-Davidson)을 샀다.

 

물론 가족들의 만류는 거셌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 할리 데이비슨과 함께 나란히 선 모습이 멋져 보인다.(이종철 문화관광해설사)

 

꿈에 그렸던 이 놈을 타고 전국으로 오지탐험에 나섰다.

 

더욱 가까이서 자연과 숨 쉬고 싶어서였다.

 

※할리 데이비슨(Harley-Davidson)-미국의 모터사이클 제조업체이자 이 회사가 만들어 낸 모터사이클의 총칭.

 

이종철 오산시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나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눴다.

 

▲ 오산과 관련된 유적, 지역 등 문화이야기에 흠뻑 빠진 이종철 해설사.

 

그는 이야기가 참 많은 사람이다.

 

풍부한 경험 덕에 듣고 있노라면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 한 기분이 들 정도다.

 

인터뷰 초반, 그는 이름 석 자를 3행시로 소개했다.

 

“이-이야기가 / 종-종일토록 / 철-철철 넘치는 이종철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3행시는 사실이라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증명됐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귀가 순해진다’는 나이, 이순(耳順)에 구입한 오토바이를 타고 그는 전국 곳곳 오지를 찾아 다녔다.

 

이를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200개가 넘는 전국 관공서에 탐사할 오지를 묻는 편지를 보냈으나 고작 3곳에서만 답이 왔다.

 

다시 그는 방법을 바꿔 우체국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 곳에서 가장 오래 근무하고 퇴임을 앞둔 집배원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 방법은 통했다.

 

우체국은 집필을 준비하는 이종철 해설사의 청을 흔쾌히 들어 줬다.

 

예상은 적중했고 집배원 입에서 그가 목적하는 곳곳의 오지가 술술 나왔다.

 

▲ 이종철 해설사가 방문한 오지를 표시한 지도.

 

오지탐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느 한 번은 경상남도 산청군 지리산 자락 오봉마을을 찾았다.

 

그 곳에 민대식 노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부부는 매일 아침이면 배낭을 메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그들은 산속에서 약초와 버섯 등을 채취하며 생활했다.

 

한 달 경비에서 가장 많이 들어가는 건 전기세인데, 그나마도 두 노인이 쓰는 돈은 30만원 안팎이라고 했다.

 

집 옆으로 커다란 그야말로 집채만한 바위가 하나 놓였고, 그 옆에 50미터는 족히 될 낭떠러지가 있다고 했다.

 

낭떠러지 안으로 계곡이 흐르고 노부부는 집 앞 마당에 원두막을 지어 그 풍경을 만끽했다.

 

원두막 천정의 반은 지붕이고 반은 하늘인데 이종철 해설사가 찾은 날은 밤하늘인데도 온통 하얀빛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이어진 별비. 유성(별똥별) 수십여 개가 쏟아져 별비가 내렸다.

 

▲ 강원도 정선에서 따온 오디로 만든 원액. 주석잔에 담기니 색상이 더욱 곱다. 고구마는 난로에서 직접 구운 것.

 

이종철 해설사는  “민 선생님, 정말 신선이나 도사같이 사십니다, 그려”라고 말을 했으나 돌아온 답은 의외였단다.

 

“도인은 내가 아니라 서울같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입니다”했더라는 것이다.

 

이유인즉 그 분이 지인의 여식 결혼식으로 서울에 갈 일이 있었는데 아침 나절 혼자 출발해 밤에야 닿을 수 있었다.

 

다녀온 뒤 3일을 앓아 누웠다고 한다.

 

공해와 소음으로 찌든 도심환경을 그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세상 모든 것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이 그에게는 도인처럼 보였을 테다.

 

‘최초의 영감을 이루는 자가 성공한다.’

 

이종철 해설사가 가슴속에 간직한 좌우명이다.

 

“뭐든 해보지도 않고  ‘그때 그걸 했었어야 하는데’하고 후회하는 것 보다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더욱 숭고하다”고 그는 말한다.

 

비록 실패했더라도 도전하는 용기는 값지고, 또 실패를 거울 삼아 다른 도전을 실행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의 인생은 도전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할리 데이비슨 말고도 그는 예순을 넘기고 나서 무려 4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과거 공직생활(화성군청), 문구도매점, 체육사, 포장지업체 등 사업을 나이 52에 과감히 접었다.

 

▲ 이종철 해설사가 난로 옆에서 온기를 쬐며 여유로운 웃음으로 바라본다.

 

그는 인생에서 오롯이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시기가 이 무렵이라고 한다.

 

이것은 남녀를 불문한다.

 

그 뒤  ‘나를 찾자’라는 일념으로 많은 도전을 자청하고 있다.

 

열고 싶은 문은 모두 열었고 그 때마다 문들은  ‘활짝’ 열렸다.

 

오산시문화관광해설사 이수과정에 1년이 소요됐다.

 

나아가 독서심리지도사 1년, 필리핀컨설팅에 5년이 걸렸다.

 

5년 동안 그는 필리핀에서 생활했다.

 

그가 기억하는 필리핀은 풍요롭다.

 

적도 가까이에 위치한 필리핀은 3모작을 한다.

 

이런 천혜의 자연조건은 그의 말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곡연구소를 필리핀으로 몰리게 했을 것이다.

 

열대과일도 풍부해 식량자급률이 높다고 한다.

 

또 한국인에게 친절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들에게 인간적 존중과 배려를 보여 준다면 마찰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다음달이면 그는 또 하나의 문을 연다.

 

오산시 청학동에 독서치료협회를 개장하는 것이다.

 

자격증 과정으로 운영되는데 독서를 통해 아이들의 심리를 치료해 주는 역할도 병행한다고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힐링(healing 몸이나 마음의 치유)’이 화두다.

 

자연과 하나되고 자연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이종철 해설사는 그것이 곧 힐링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오지를 찾아 떠나는 발길도,  탐험결과를 바탕으로 약이 되는 식단표를 제작한 정성도 모두 치유의 과정이다.

 

▲ 이종철 해설사가 제작한 약초 식단표를 가리키고 있다.

 

더불어 문화해설사로서 깊이있게 문화유적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 또한 그에게는 힐링의 전파다.

 

한가지 반가운 소식은 그의 재미난 이야기들을 매월 1일 발간되는 본지(오산인터넷뉴스) 지면판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산의 역사, 인근 수원·화성의 역사, 그것들과 관련된 그의 인생 경험들을 엿볼 수 있다.

 

정말 흥미진진하다.

 

그의 목표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이있는 선생님, 삶의 의미를 전해주는 선생님’으로 남는 것”이라고 한다.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기운이 솟구치는 그의 행보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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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01-08 1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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