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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둥지가 된 남자가 있다. 오산시 오산동에서 가정식 백반전문점  ‘만수무강’을 운영하는 정만수 대표. 그의 삶에서 가정이라는 둥지는 비할데 없는 소중함과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나침반을 잃었던 날들을 잡아준  ‘가정’. 그는 그 곳에서 안락하고 평온한 둥지가 됐다. 그 안에서 그의 아내와 네 자녀가 행복한 나날을 그리고 있다. 정 대표를 만나 차갑고 간혹 따뜻했던 인생 이야기를 들어 본다.

 

▲ 정만수·김선월 부부. '만수무강' 가정식백반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 아빠, 밥 줘!

 

정만수 대표는 조리사다. 1973년 자격증을 취득하고 40년 가까이 요리를 하고 있다. 요리에 관해선 만능이다. 아내에게 삼시 세끼 밥을 차려줄 정도라고 한다. “오늘은 뭘 먹고 싶어?” 물은 다음 아내가 원하는 메뉴를 손수 준비한다.

 

결혼 30년 내내였다. 2월12일 결혼기념일도 기억하고 있다. 아내 김선월씨(51)는  “간혹 나는 깜빡하고 모를지언정 남편은 꼭 기억한다”며 내심 흐뭇해 한다. 그렇게 자상한 남편이다.

 

아이들도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며 자랐다.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밥 줘”가 아니라 아빠, 밥 줘!”를 외친다. 자장면, 탕수육, 초밥, 회뜨기 등 다재다능이다. 일식과 양식까지 섭렵했다. 아이들은 아빠의 사랑이 담뿍 담긴 음식을 먹고 착하게 자라줬다.

 

정 대표는 “옛날엔 주방장 하는 것이 창피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마음껏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매년 생일을 맞는 동네 미망인들에게 미역국을 대접하고 있다.

 

▲ 오산시 오산동 873-2번지. '만수무강'

 

■ 세 아들이 가져다 준 보물

 

부부는 슬하에 3남1녀를 뒀다. 명절에 세 아들과 지내는 차례가 정 대표는 즐겁다. 그는 첫째 아들에게 한국 성인의 이름을 붙여줬다. 둘째, 셋째 아들과 딸에게도 세례명을 지어줬다. 성인처럼 훌륭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들은 그런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모두 착실하게 성장했다.

큰 아들은 유아체육교사를 하고 있다. 둘째 아들은 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다. 셋째 아들은 자동차 관련 학과에 재학 중이다.

 

정 대표는  “1년에 4~5번 근방 홀몸어르신들께 식사를 대접해 드리는데 그게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된 것 같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과 아내가 그의 보물이고 둥지다.

 

▲ 아늑하고 깔끔한 실내 분위기.

 

■ 얼굴을 하나 만들다

 

새벽녘 성당일을 보기 위해 수원교구로 향하고 있었다. 첫 아이를 가질 때 였으니 20여 년 전이다. 겨울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던 길에 정 대표는 사고를 당했다. 놀란 나머지  “으악!” 소리를 지르며 혀를 깨물었다. 혀는 어른 손 만하게 부었다.

 

다행히 잘리지는 않았다. 눈에서 유리조각 6개가 나올 정도였다. 눈동자를 조금만 굴렸으면 찢어졌을 것 이라고 당시 안과의사는 말했다. 실수로 눈을 비볐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한다.

 

얼굴은 120여 바늘을 꿰맸다. 담당 의사는  “얼굴을 하나 만드는 격”이라고 했다. 달포 반이 지나 퇴원했다. 아내는 임신중이었다. 성당 관계자 및 지인들은 이 사실을 숨겼다. 아이와 산모의 건강을 걱정해서다.

 

당시 천주교 수원교구는 각 지역 50개 성당에 공문을 보내  “주일미사에서 정 대표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자”며 크게 걱정할 정도였다. 정 대표는  ‘신앙의 힘이 치유에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 푸짐하게 차려낸 가정식백반 한상.

 

■ 행방불명된 아버지, 흩어진 형제들

 

정 대표는 13살 때 부모님을 잃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린 형제들이 중풍을 앓았던 아버지를 모실 수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정 대표의 큰집으로 아버지를 모셨다.

 

그 곳에서 어느날 아버지는 행방불명됐다. 언제 돌아가셨는지 모른다.

1남3녀 중 동생과 누이를 잃었다. 큰 누이만 연락이 닿는다. 고향 충남 논산에서 서울로 올라 왔다.

 

남대문 시장으로 갔다. 남산 부근에서 구두닦이도 하고 신문팔이도 했다.

신문지를 이불 삼아 잤다. 장사로 번 돈을 깡패들에게 뺏기기가 다반사였다. 옷은 반바지 차림에 속옷이 전부였다.

 

남산 후암동 빨래터에서 아낙들에게 비누를 빌려 빨아 널고, 마를 때까지 기다린 뒤 다시 입었다. 그러다  “식당에 가면 밥은 안 굶는다”는 말을 듣고 14살 때 식당에 일자리를 잡았다. 배달이며 주방 심부름까지 안해본 일이 없었다.

 

▲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오리주물럭.

 

■ 받은 사랑 나누는 행복

 

서울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중 직업소개소 지인이 수원의 식당을 추천해줬다. 정 대표는 수원으로 향했다. 식당의 주방장은 일본사람에게 요리기술을 배운 사람이었다.

 

주방장 조수가 잦은 무단결근으로 속을 썩이자 그는 정 대표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그 때부터 기술을 배웠다. 천주교 신자였던 식당 주인은 정 대표를 성당으로 인도했다. 그 뒤 식당 주인은 고아나 다름없는 정 대표를 거뒀다.

 

그 곳에서 정 대표는 새로 태어났다. 정 대표는 그들에게 받은 사랑을 성당에서 봉사활동으로 되갚고 있다. 앞으로 고아원 등 그의 마력적인 요리솜씨가 필요한 곳에 가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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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9-21 19: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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