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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기고> 수필가 박민순 =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숨결이 깊숙이 배여 있는 곳으로 시장은 우리네 사람들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곳이다.

 

현대 도시인들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기에 대부분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물건을 산다.

 

편리하게 자리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장 한켠에 마련된 대형 카트를 이용해 깔끔하게 진열된 물품들 사이를 오가며 사고 싶은 물건을 담기만 하면 된다.

 

가격이 이미 정해져 흥정이란 말은 필요조차 없다.

 

또한 인터넷이나 전화로 주문(정해진 금액 이상)하면 빠른 시간 안에 집으로 배달까지 해 준다.

 

▲ 매월 3일과 8일에 전통재래시장 '오산장'이 열린다.

 

하지만 정과 재미가 넘치는 5일장은 다르다.

 

소박한 인심과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하다.

 

시끌시끌하다.

 

하나라도 더 팔고 더 얻기 위해 흥정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한 마디로 살아있는 우리의 삶터 풍경이다.

 

장(場)은 언제나 동트기 전인 새벽부터 꿈틀거린다.

 

온갖 장물(場物)들을 가득 싫은 장차들이 도착하고, 장꾼들이 부지런히 좌판을 펼치면 장은 아침 햇살이 퍼지기도 전에 손님 맞을 채비를 끝낸 장꾼들로 꽉 들어찬다.

 

오산천로 오산대교에서 시민회관 입구까지, 경기대로 333번길 오산천로에서 성호새싹길 입구까지, 성호대로 중원 사거리에서 롯데마트 전까지, 오산 터미널 앞 대원로 15번길 양 옆으로 끝자리가 3일과 8일에 서는 오산장.

 

다소 복잡하고 불편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재래시장만의 장점은 많다.

 

전국 각지에서 공수해 온 농 · 수산물의 싱싱함은 물론이요, 1960~‘70년대를 연상시키는 ‘약장수’나 엿을 팔며 ‘품바타령’을 하는 거지 복장의 상인, 그 옛날 어린 시절 귀 막고 지켜보던 ‘뻥’하는 튀밥아저씨의 뻥튀기 소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잡다한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보부상, 다양하면서도 먹음직스러운 ‘먹을거리’와 하나 더 주는 훈훈한 인심과 따뜻한 정, 팔고 사는 흥정으로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오산장은 1753년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 3일과 8일에 열린다(당시엔 음력)는 내용이 나온다.

 

1792년 발간된 『화성궐리지』와 1863년 발간된 『대동지지』, 1899년에 나온 『수원부지』에 그 명칭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최소 260년의 역사를 간직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0년대 초 경부선 철도의 개통으로 오산장(당시 오산은 수원군 성호면이었음)은 수원장과 화성의 조암 · 발안장으로 연결돼 화성 · 오산 일대의 남부시장권을 형성했다.

 

근대에 들어서도 오산장은 각종 문헌에 나타난다. 1911년에 간행된 『한국수산지』에는 ‘오산장은 수원군내 5개장(성내장 · 성외장 · 오산장 · 발안장 · 안중장)중 성내장 다음으로 물자의 집산이 번성했다’고 기록돼 있다.

 

『오산시사』에는 ‘1914년 조선총독부는 경기도고시 제71호와 시장규칙 제27조에 의해 수원군 성호면에 <오산시장>의 명칭으로 시장경영지로 지정했다.

 

이 때를 시작으로 현재의 재래시장(오산중앙시장)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적혀 있다.

 

또한 1926년 오산시장 상황 조사에서 거래액은 23만8천원이었다.

 

오산장을 찾는 사람은 하루 평균 1천 명, 거래자는 800명 정도라고 구체적인 통계수치까지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규모를 엿볼 수 있다.

 

1950년대 초 6 · 25 전쟁 직후 오산장은 기존 장터에 새장터를 개설해 구장터는 끝자리가 8일, 새장터는 3일인 날에 장이 섰다.

 

그러나 상인들의 구시장 집중 현상으로 새장터(오산천변 궐동)는 시장 형성 자체가 무너지게 됐고 우시장(牛市場)만 남았다.

 

그러다 1988년 오산시 승격 직전에 공매되어 남촌동 관내로 이전했다.

 

현재는 그나마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오산 우시장은 수원장과 더불어 우전세(牛田勢)가 강해 인근 100리길을 걸어오는 소장수도 많았고, 적게는 3마리에서 30마리까지 소를 이끌고 오가던 토박이 장꾼들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역사와 추억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예전에는 가축전 · 잡곡전 · 채소전 · 약초전 · 의류전 · 잡화전 · 먹거리전 등 장물별로 세분화 되어 장이 섰지만 지금은 소를 제외한 가축전만이 모여 있을 뿐 고루 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오산천로 오산대교에서 시민회관 입구까지는 봄에는 육묘, 묘목, 여름엔 생고추, 풋마늘, 가을엔 건 고추, 마늘장이 선다.

 

가축전은 냄새나고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몇 년 전 오산천 둔치로 밀려났다가 오산천이 생태하천으로 복원돼 오산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변모하면서 경기대로 333번길 제자리로 돌아왔다.

 

토끼 · 닭 · 오리 · 염소 · 개 · 고양이 · 오골계 등이 새 주인을 기다리며 소규모 가축전이 번성했던 옛 영화를 대신하고 있다.

 

오산시장은 오산시민은 물론이고 인근 화성시 동탄면, 정남면, 양감면, 향남읍민, 용인시 기흥구민 일부, 처인구 남사면민, 평택시 진위면, 서탄면 주민들이 주 고객이다.

 

투박하고 거친 손에 바를 화장품을 사러 나온 농부의 아낙네들, 농사일로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시부모님, 아이들, 남편의 옷가지와 밑반찬거리를 챙기러 나온 주부들, 모처럼 동네 사람들과 장도 보고 어울려 막걸리나 소주에 순대국밥이라도 걸치려고 나온 촌부들, 시골 노인들의 설레고 신나는 장구경, 이런저런 사연과 인파 속에 오산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전라도의 벌교장, 강원도 동강장,전라도와 경상도를 아우르는 화개장에는 아직도 구멍난 장화나 헤진 고무신을 때워주고 헌신을 깁는 신기료장수나 쇠를 달구어 두들기고 두들겨서 각종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 녹슬고 무디어진 칼날, 도끼, 낫을 숫돌에 갈아주는 칼갈이 아저씨 등이 남아 있는데 오산장에선 찾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풍성한 물건들을 보고 골라 사는 재미도 재미지만 장터의 가장 큰 즐거움은 아무래도 다양한 온갖 먹을거리를 기호에 따라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풍성한 물건만큼 풍성한 추억을 안겨주는 장터, 그 속에 담긴 정겨움이 장바구니를 더욱 든든하게 만들고 가족 간의 사랑도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경기도에선 성남시의 모란장이 가장 큰 장터로 손꼽힌다.

 

북부에는 용문산 정기 담은 나물의 향기 가득한 양평장(3일, 8일), 동부에는 한강 4대 나루 명성 그대로 도자기와 창호지의 여주장(5일,10일), 오산처럼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아 장날이면 다소 복잡하다는 인상을 주는 백암순대의 용인장(5일,10일)이 잇다.

 

서부에는 싱싱한 서해의 해산물이 가득한 사강장, 발안장, 남부에는 안중장 외에도 대구장, 전주장과 함께 조선시대 3대장으로 불릴 만큼 규모가 컸었던 안성맞춤 유기, 가죽 꽃신, 한지로 유명한 안성장(2일, 7일) 등이 있다.

 

수원장과 더불어 경기 남부권의 큰 장세를 형성하고 있는 오산장.

 

난장이 펼쳐지고 장꾼들과 장바구니를 든 손님 간 구수한 입담과 넘쳐나는 인정, 우리의 삶이 녹아 있는 오산장은 현대화란 거대한 물결, 즉 우후죽순처럼 이곳저곳에 생겨나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에 다소 위축된 감은 있어도 전통재래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꿋꿋하게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그 자태를 잃지 않을 것이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3일과 8일, 오산장으로 가보자.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거쳐간 그곳에서 조상의 숨결을 느끼며, 흥정을 하면서 작은 돈의 소중함도 깨닫고, 투박한 장꾼들의 질박한 삶을 엿보면서 정겨운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 박민순

· 1956년 충남 천안 출생

· 『동양문학』으로 등단 (수필가 1991)

. 제1대 오산불교청년회장(1982) 역임

· 제7대 오산문인협회장(2004~2005) 역임

· 한국문인협회 회원, 오산시문학회 사무국장

. 물향기문학상 운영위원장(2009~ )

. 오산문화원 <오산문화> 편집위원

· 제3대, 4대, 5대 사)바른선거 시민모임 오산지회장(2004~ )

· 제16회 학원문학상(1973 · 소설)

· 월간 『학원』 연작소설 당선(1976)

· 제12회 경기도문학상(2003 · 수필)

· 제4회 오산문학상 대상(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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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9-07 13: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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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2 개)
  • 이런2012-09-09 14:40:52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오산문화에 나온 글과 유사합니다.(대동소이) 이런 글을 조그마한 동네에 이곳 저곳에 쓸 필요가 있습니까? 이런걸 자기 표절이라고 합니다. 이런~

  • 남촌시민2012-09-07 17:07:55

    사람냄새,인정으로 재래시장은 좋지만,주차장 불편,먹거리 등 유사상품 不집결,휴식처,볼거리 부족/상인의 안일한 생각 등으로 재래시장의 활성화가 아쉽다.260년 전통의 사람냄새가 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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