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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조윤장 편집국장 = 다툼은 서로 생각이 다르고 지향하는 관점을 벗어나기 때문에 일어난다.

 

개인간 싸움, 그룹별 반목, 종교간 분쟁, 국가간 전쟁 등이 그 것이다.

 

학교법인 오산학원 이사회 내분(8.10/11/12 보도)은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10년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여전하다.

 

얽히고 뒤틀린 실타래가 풀릴 듯 아닌 듯 가늠할 수 없다.

 

아니 점입가경에 예측불허다.

 

오산학원 이사회는 계속된 파행운영 탓에 이사장을 선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얼마 전 편법으로 오산대학교‘총장’공개모집에 나섰다.

 

그러자 오산대교수협의회 학교노조 직원연합 등 학교구성원들이 이사회 결정에 반대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이사회의‘편법결정’을 문제 삼아 반박한 것이다.

 

10년 넘도록 갈피를 못잡던 이사회가 지난해 정이사 9명 체제로 출범, 관선이사 체제를 벗어나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이에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는 오산대학교 총장을 공모하기 위해 학교 홈페이지 등에 공고를 게재했다.

 

공개모집 결과는 30명이 몰리면서 순항이 예고됐다.

 

이사회는 지원자 30명 가운데 5명을 가려 최종적으로 1명을 선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교수협의회·학교노조·직원연합 등 3개 단체는“이사회 결정이 정당하지 않은 권한”이라며 총장 공모 취소에 이사회 사퇴를 촉구했다.

 

3개 단체는“이사장도 선출하지 못한 이사회가 총장을 선출할 수 있느냐”며“총장 공모는 이사장 선임 지연과 이사회 파행운영에 따른 책임회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학교법인 오산학원 이사회는 예정대로 8월21일 총장 선임을 위해 이사회를 소집했지만 투표에서 무효표가 쏟아져 무위에 그쳤다.

 

앞서 이사회는 공모를 통해 5배수로 추린 후보자들을 놓고 프리젠테이션(Presentation) 평가와 면접을 가졌다.

 

이날 정이사 9명 전원이 총장 선출 투표(1차)를 했지만 누구도 과반 득표자가 없었다.

 

이어 최다득표자 2명을 대상으로 펼쳐진 2차 투표는 무효표(기권)가 5표로 나왔고, 의결정족수를 과반으로 정한 정관에 충족하지 않아 결국 무산됐다.

 

한 때 관선이사들이 뽑은 이사장을 제외하면 오산학원 이사회는 10년 넘게 이사장이 공석으로 있다.

 

학교 정관은 “학교의 장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면(任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임면권자(이사장)가 부재한 상태에서 총장 선출을 밀어 부친 이사회가 편법 논란에 휩싸인 채 뭇매를 맞고 있다.

 

학교법인 오산학원은 오산중학교·오산고등학교.오산대학교를 아우르고 있다.

 

당초 학교법인(재단) 내부에서 소용돌이 친 갈등과 충돌은 오랜 세월동안 홍역을 자초하고 있다.

 

잠시 오산학원이 걸어 온 길을 짚어 본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고 6·25한국전쟁을 앞둔 1948년11월20일 오산지역 유지 34명이 뜻을 모아 설립한 성호고등공민학교.

 

지금의 3개 학교를 낳은 모태(母胎)다.

 

1950년 5월20일 (재)오산중학교 설립인가와 초대 서상길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공식적으로 학교다운 기틀을 다지게 된다.

 

(재)오산중학교는 1953년 6월 (재)오산학원으로 명칭을 바꿔 이듬해 3월 오산고등학교를 설립한다.

 

전란의 폐허속에서 과도기를 거친 (재)오산학원은 1964년1월 학교법인 오산학원으로 조직을 변경하게 된다.

 

오산학원은 반세기 가까이 학교법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무렵 오산학원에 위기가 드리워 진다.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T그룹 총수 S씨가 1977년 학교법인에 기금을 출연, 제13대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주도권 경쟁에 합류하는 불씨를 지폈다.

 

그는 16대까지 연거푸 4번에 걸쳐 오산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학교법인이 소유한 출연기금은 7(오산지역 유지):3(T그룹 총수 S씨) 비율로 알려지고 있다.

 

오산학원은 1950년대 설립한 오산중·고를 운영하면서 1978년 오산공업전문대학 설립·승인과 함께 사학의 명문을 지향하며 인재양성에 뛰어 들었다.

 

오산공업전문대학은 1990년 오산전문대학, 1998년 오산대학, 2012년 오산대학교로 각각 교명을 변경했다.

 

총 교지면적 16만5천㎡(약 5만평)에 16개 건물동, 202개 강의·실습실과 운동장 및 골프연습장 등을 갖추고 있다.

 

학부(학과·전공)는 ▷공학계(기계·자동차·산업경영과 등) ▷자연과학계(패션디자인·헤어아트·호텔조리계열 등) ▷인문사회계(관관경영계열·경찰행정·유아교육과 등) ▷예체능계(시각디자인·스포츠과학계열 등) 등 4개로 구성돼 있다.

 

오산대학교는 1981년 기계·전자 등 4개 학과에서 제1회 졸업생 404명을 시작으로 2012년 제32회 학위수여식(1천958명)까지 총 4만9천682명을 배출했다.

 

학교법인 오산학원이 갈등과 반목으로 구심점을 잃게 된 결정적 이유는 사실상 헤게모니(hegemony-주도권)를 행사했던 T그룹 총수 S씨가 타계하면서 점화됐다.

 

이를 계기로 고(故) S씨 일부 가족과 친·인척 등이 후계자를 자처하며 주도권 경쟁에 나서 내분이 일었고 이해 당사자간 직무정지가처분신청 등 법정분쟁으로 번졌다.

 

급기야 자체수습이 어렵다고 판단한 교육부가 1999년 관선이사(총 9명-이사장 선출)파견체제로 학사운영을 맡겼다.

 

2001년 당시 이사장이 교육부에 제출한 학원정상화방안(관선이사 3명, 지역인사 3명, S씨 일가 3명)이 채택된 것이다.

 

그러나 S씨 일가측에서 선임된 인사 가운데 1명이 함께 선임된 특정인 배제를 요구, 이사 선임 서류를 교육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역인사 이사 선임에 누락된 특정인이 불만을 표출, 제출안이 전면 보류되면서 학원정상화는 멀어졌다.

 

관망하던 교육부는 2011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학교법인 오산학원에 정이사 체제를 갖추게 했다.

 

그렇지만 학교법인 오산학원 이사회는 7월24일 제229회 이사회를 개최하는 등 수차에 걸쳐 이사장 선출 등 학원정상화에 나섰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최근 이사회에서‘법인 정상화’공론이 형성되면서 악화일로를 걷던 상황이 급반전하는 분위기였지만, 총장 선출 편법성에 휘둘리며 허사에 그치고 말았다.

 

지역사회 이목은 파행을 거듭하는 이사회에 쏠렸고, 시간이 갈수록 여론은 따갑게 쏠리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부실대학 구조조정’이다.

 

대학입학 자원이 점차 줄면서 오는 2015년 이후 지금의 60만 명이 40만 명 선으로 조정될 경우 오산대학교가 당면한 현실이다.

 

현재 오산대학교 재무구조는 비교적 건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오산 유일의 사학재단, 학교법인 오산학원이 이사회 갈등으로 점철돼서는 안된다.

 

기득권과 주도권을 버리고 상생법(相生法)을 찾아야 한다.

 

오산학원 주인은 수천 명 학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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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8-26 17: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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