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hong 기자
【이미숙 칼럼】일요일(8월5일) 아침,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던 아들이 다급하게 나를 찾는다.
우리나라 축구가 영국을 이겼다는 승전보다.
잠자는 사이에 벌어진 깜짝쇼(?)였기에 놀란 마음이 적지 않았다.
어디 축구뿐인가.
사격, 수영, 체조 등 많은 종목에서 사력을 다해 몸부림치며 고도의 집중력으로 기량을 뿜어내는 태극전사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장미란 선수가 바벨에 마음을 실어 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별키스’를 봤으며, 브라질과 4강전에서 최선을 다해 싸워 준 그들이 장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기쁜 일에 미묘하게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정체는 뭔가!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킥커로 나선 기성용 선수가 밀레니엄 스타디움 골망을 가르며 승리를 낚던 순간 환호성을 연발하는 가족들 뒤로 내 인생 2막 즈음에 다녀왔던 유럽여행이 오버랩되어 히드로공항을 떠올린다.
40대에 혼자 떠났던 배낭 길.
9월 초, 약간 싸늘한 런던의 초가을 아침, 템즈강을 보며 마셨던 진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기억한다.
한 모금 입에 넣으니 현기증이 난다.
독한 술이라도 어디 이러하랴.
쓴 맛의 위력이 그대로 위벽을 후리고 지나간다.
눈을 찔끔 감았다가 고개를 들어 주변 벤치를 둘러보니 검정 수트에 뽀얀 얼굴을 한 런던보이들이 샌드위치와 함께 그 커피를 어지러운 기색없이 즐기고 있었다.
뭐지?
처음 도시에 상경한 촌놈처럼 커피 한 잔에 급 소심해졌던 낮선 이국의 풍경에 의기소침됐다.
너무 넓어서 끝까지 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하이드파크며 정확한 도로 이정표로 지도만 갖고도 어디든 찾을 수 있는 훌륭한 도시설계.
전철에서 내리지 못해 당황해 하던 차에 뒤에서 ‘open’버튼을 꾹 눌러주던 영국 신사의 친절한 큰 손(영국 전철은 내리는 승객이‘open(열림)’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
기름때 묻혀 일하던 손을 오랜 시간 멈추면서까지 길을 알려주던 엔지니어.
“Easy walking”이니 전철비 아끼고 걸어가라던 기술공의 성실한 몸짓.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친철을 베풀며 잘 대해주는데도 자꾸만 더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도도해 보이는 그들 앞에 다가서지 못하고 주눅 들었던 못된 기억이 스멀거리는 런던의 추억.
세계 최강의 IT산업 발전과 김연아, 박지성, 박태환과 같은 스포츠 인재를 육성해 낸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느꼈던 수축된 마음은 설명할 길이 없다.
지난 수 많은 세월을 견뎌 온 약소국의 서러움이 빚어 낸 그늘일까?
이제는 힘주어 말 할 수 있다.
장하고 위대한 태극전사들이여..
그대들이 런던을 제압했노라고!
◆이미숙-오산인터넷뉴스 객원논설위원/언론학박사/(사)한국미디어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