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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끝나지 않은 전쟁 6·25 - 전쟁은 마약처럼 치명적으로 중독되기 쉽다
  • 기사등록 2012-06-24 18: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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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조윤장 편집국장 = ‘The rush of battle is often a potent and lethal addiction for war is a drug.’(전쟁은 마약과 같아서 그 격렬함에 치명적으로 중독되기 쉽다.)

 

이라크 전쟁 때 종군기자로 참여했던 미국 워싱턴 타임지 크리스 해지스가 회고한 말이다.

 

공격작전명 ‘이라크 자유작전(Operation Iraq Freedom)’으로 2003년3월20일 개시된 이라크 전쟁은 같은해 4월 미·영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2011년12월15일 사실상 종전이 선언됐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이하 유엔안보리)가 UN회원국들의 무력사용을 승인,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공하는 합법적 빌미를 준 것이다.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제조를 이유로 이라크를 공격한 전쟁이다.

 

‘알카에다의 2001년 9·11테러에 대한 복수다’,‘이라크에 매장된 엄청난 석유 때문이다’등 이라크 전쟁을 둘러 쌓고 명분과 의견이 분분하다.

 

이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반전시위를 점화시키는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 우리에게도 뼈아픈 전쟁의 기억이 있다.

 

6·25 한국전쟁은 UN창설 이래 최초로 UN군이 파병된 전쟁으로 기록된다.

 

1945년8월15일 일제강점기 종식과 해방 5년만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좌익세력이‘민족통일’을 표방하며 일으킨 전쟁이지만 결과는 민족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키고 분단체제를 강화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50년6월25일 새벽 4시, 38선 지역에서 북한의 공세로 포화가 터지고 인민군이 4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인민군은 파죽지세로 3개월 만에 대구, 부산 등 경상도 일부를 제외한 전지역을 장악했다.

 

그러자 미국은 유엔안보리를 소집, UN군(국제연합군) 참전을 결의케 했다.

 

앞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 각 나라 정상들은 전쟁을 방지할 기구가 필요하다고 뜻을 모았고 미국 루즈벨트 대통력을 중심으로 1945년 6월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50개국 대표들이 모여 UN을 창설했다.

 

예컨대 국제평화기구다.

 

UN창설 이래 첫 UN군 파병이 의결되면서 이로써 한국전쟁은 국제전으로 확전됐다.

 

당시 유엔안보리는 소련이 중국 문제로 불참, 거부권 행사없이 통과시켰고 미 지상군은 이미 한국전선에 투입돼 있었다.

 

여세를 몰아 유엔군이 인천상륙(50.9.15), 서울수복(9.28), 38선을 넘어 평양을 점령(10.13)했으며 한국군 일부가 압록강 근처 초산까지 진격(10.26)했다.

 

그러나 유엔군의 북진에 위협을 느낀 중공군이 개입(10.25)하면서 전세가 역전, 한국군이 오산 부근까지 후퇴했다가 다시 38선을 넘어(51.3.24) 철원 일대까지 진출(6.11), 소련이 휴전을 제의(6.23)하면서 휴전교섭에 들어갔다.

 

미국이 소련 유엔 대표의 휴전제의를 수용, 15일 만에 개성에서 예비회담(7.8)이 열리고 이어 본회의(7.10)가 개최했다.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진행된 휴전회담은 미국은 한·미상호안전보장조약체결·경제원조·한국군증강 등을 조건으로 이승만을 무마시키고 1953년7월27일 유엔군과 인민군이 휴전협정을 조인하면서 마침내 전쟁은 휴전에 들어갔다.

 

그 후 6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한국전쟁은 남·북 쌍방에 사망 150만명, 부상 360만명에 국토의 황폐화를 초래했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UN은 처음으로 16개 나라로 이뤄진 연합군을 한국으로 파병했다.

 

북한군과 맞선 유엔군의 초전(初戰)이 오산 죽미령에서 있었다.

 

당시 일본 큐슈에 주둔한 스미스 중령이 이끄는 특수부대(406명)가 7월3일 새벽 3시 죽미령에 도착, 한국군과 합류한 뒤 아침 7시30분 부터 북한군과 치렬하게 전투를 벌였다.

 

스미스 특수부대는 북한군의 소련제 탱크를 4대나 박살내며 6시간15분 동안 싸웠지만 상당수가 장렬히 산화했다.

 

이 곳 죽미령에 세워진 ‘UN군 초전 기념비’는 이 땅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있다.

 

매년 7월5일 ‘UN군 초전 기념비’에서 당시 생존자 노병들과 한·미 군 관계자 등이 참석, 추념식을 갖고 있다.

 

‘Only the dead have seen the end of war.’(전쟁의 끝은 죽은 자에게만 있다.)-플라톤

 

전쟁의 참혹상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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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6-24 18: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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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1 개)
  • 안정한2012-06-25 09:50:34

    상기하자, 6.25 !국가를 지켜 산화하신 영웅님들! 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영원히 나라를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불순분자를 완전히 몰아내고,경제,사회,국방,교육,정치를 굳건하게,바르게,성장 시켜 잘사는 행복한 우리나라를 영위 합시다.건강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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