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hong 기자
❍ 하이진(Hyejin)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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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음악 활동 중 불리던 익숙한 영문 이름 ‘하이진’ (실은 ‘혜진 Hyejin’의 현지 발음) 으로 국내 데뷔음반 <Rain or Shine> 을 발표한 재즈 보컬 ‘조혜진’은 New Jersey City University 재즈보컬 석사 수료와 함께 활발한 미국 활동 이후 귀국, 국내 유명 재즈 클럽의 활동과 더불어 현재 백제예술대학의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4살 때 피아노를 시작, 유년 시절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듣고 음악인의 길을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그녀의 고백처럼 (때로 ‘성악’에도 소질이 있으니 전공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소리를 들었던) 오직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길만을 걸었던 학생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음대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그 때부터 클래식 외 다른 음악을 의도적으로 접하지 않던 그녀가 음악적으로 다른 분야에 귀를 열고 가요, 팝으로 시작해서 비로소 재즈라는 장르를 운명적으로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첫 재즈는 역시나 피아노를 통해 시작했는데 ‘케니 드류’의 곡 “Golden Earring”에 빠져 마음을 열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평소 관심이 있던 보컬 곡도 찾아 듣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그녀가 재즈 보컬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롤 모델, ‘엘라 피츠제랄드’를 접하게 되고 엘라의 많은 음악들은 그 당시 유독 개인적인 고민과 상처가 많았던 본인의 상황과 어울려 치유가 필요했던 그녀의 마음에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보컬이 되어야겠다'는 스스로의 치유는 물론 다부진 각오와 도전까지 안겨주게 된다. 결국 그 때까지 그녀의 인생 자체와 같았던 ‘피아니스트’의 길을 뒤로 하고 유년시절 약속했던 ‘평생 음악과 함께 하겠다’는 큰 목표를 위해 ‘보컬’로써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어쩌면 ‘엘라 피츠제랄드’가 그녀에게 준 그녀 인생의 가장 축복받을 선물이라 하겠다.
그 당시 이미 재즈 피아노를 수업 받고 있었던 피.아.니.스.트. ‘조혜진’은 그렇게 유학 준비를 하게 되고 미국 뉴져지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역시나 <성악에 소질이 있는 동양인 피아니스트>에게 미국 재즈의 본고장에서 <재즈 보컬>로의 시작은 예상대로 만만치 않았다. 그녀의 첫 스승이었던 ‘Nancy Marano’는 무엇보다 먼저 혹독한 발음 훈련에 들어갔다. 특히 초반에는 레슨 내내 그녀가 한 소절의 노래를 지속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고 본인이 허락할 때까지 같은 발음을 반복해서 교정시켰고 매번 "이런 Asian 발음으로는 학교 입학시험은 커녕 노래할 생각도 접어라"라는 질책과 자극의 연속이었다. 이런 혹독한 담금질 속에서 그녀는 호흡과 발성, 곡 분석, 스캣, 편곡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독학을 통해 시험 준비를 병행했고, 결국 그녀의 이런 노력은 그 만큼의 결과를 가져온다. 만약 이 시절 스승의 혹독한 발음 교정이 없었다면, 또는 ‘하이진’ 스스로가 독학의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몇 년 후 그녀가 재즈의 본고장에서 인정받는 재즈 아티스트로 자리 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하이진은 스승 Nancy 몰래 응시한 시험에서 하나 둘 좋은 결과를 얻기 시작했고, 결국 New Jersey City University의 대학원 과정에 최종 입학허가를 받게 되었다. 이때 Nancy는 "너같이 끈질긴 학생은 처음이다. 분명히 훌륭한 뮤지션이 될 거다. Good Luck!" 이라는 말과 함께 한 단어를 적어주었다고 한다. 그 단어는 바로 "Perseverance (인내, 은총)". 그리고 이 단어는 이때부터 그녀의 보컬리스트로의 삶에 큰 힘을 주는 단어가 되었다.
New Jersey City University에서 본격적인 재즈 공부를 시작하게 된 그녀는 Roseanna Vitro라는 인생 최고의 스승님을 만나게 되는데 Roseanna는 그녀를 '스캣머신'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크고 작은 공연에 세우며 경험을 쌓게 한다. 때로는 어머니같이, 때로는 친구처럼 자신에게 열정을 베푸는 Roseanna와의 수업과 공연에서 그녀는 어떤 뮤지션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조금 더 확실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 시간은 그녀를 지금까지 있게 하는 크나큰 원동력이자 구심점이 되게 했다고 한다.
그녀는 Eddie Daniels, Peter Erskine 같은 연주자와의 협연을 비롯해서 Birdland, Small, Smoke, Cleopatra needle, Cecil, Trumpets 등 수많은 클럽에서 연주하면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대학원에서는 빅밴드의 전속 보컬로 노래하며 NJCU Jazz Festival, NJ Vocal Workshop 공연 등 수많은 캄보밴드의 보컬리스트로 러브콜을 받았다. 그녀는 그래미에 여러번 노미네이트되었던 엔지니어 Paul Wickliffe와 맨하탄에서 활발히 연주하는 연주자이자 그녀의 교수였으며 때론 그녀와 같이 연주하는 세션이었던 연주자들과 앨범의 제작에 들어가고 그것을 마칠 무렵 그녀가 맨하탄의 한 클럽에서 노래하는 것을 본 Sony 관계자는 음반 내는 것을 제의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과감히 졸업을 위한 논문과 학술발표에 매진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 결과 자신에게 재즈 보컬리스트가 되도록 영감을 준 ‘엘라 피츠제랄드’의 곡 <Billie's Bounce>를 분석한 석사 논문으로 보컬로서는 드물게 성공적인 학술 발표회를 갖고 졸업 연주를 마치게 된다. 어쩌면 이것은 재즈 보컬의 길로 이끈 ‘엘라 피츠제랄드’에 대한 그녀만의 애정 어린 약속과 보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의 좋은 제안과 함께 하고 싶은 스승님을 비롯한 음악적인 동료들을 뒤로한 채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고 곧 백제 예술 대학교의 전임교수를 거쳐 학과장으로 재직하게 된다.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 <천년동안도>, <에반스>, <원스 인 어 블루문>, <올 댓 재즈> 등 여러 클럽에서 "하이진 퀸텟"이라는 이름으로 크고 작은 공연을 갖고 있으며, 미국 활동 중 자신이 직접 프로듀서와 편곡을 맡아서 자작곡과 스탠다드 6곡씩을 넣어 녹음한 음반을 2009년 발매, 기념 공연을 갖는 등 활발히 활동해왔다.
학과장이 된 이후로는 눈에 띄게 바빠진 스케쥴 때문에 연주에 소홀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밤 잠 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뮤지션으로서의 삶임을 다짐하며 두 번째의 앨범을 준비해왔다.
결국 2011년 2월, 그녀는 바쁜 스케쥴을 과감히 뒤로 한 채 일주일 일정으로 뉴욕에 갔고 모든 재즈피아니스트의 동경인 피아니스트, 케니워너를 비롯, 현재 제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뉴욕의 뮤지션들과 함께 4시간 30분 만에 자작곡 7개를 포함한 12곡을 녹음해서 귀국했다. 한 번 시작하면 잠을 설치면서라도 해내고야마는 그녀의 추진력으로 하이진의 2집 앨범인 "LIVE & LOVE"가 이제 우리 앞에 선보일 준비를 완료한 상태이다.
바로 이 "LIVE & LOVE"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선보이는 ‘하이진’의 두 번 째 음반을 듣고 있으면 그녀가 재즈와 함께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진지함부터 모두가 행복하도록 기도하는 남에 대한 배려심과 따뜻한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만의 화법이 담긴 흔적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이런 음악적인 노력과 앞으로의 든든한 행보가 재즈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이들은 물론 깊이 있는 음악을 기다리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