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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임다혜 양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은 엄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친구처럼 다정하다. 두 남동생은 짖꿎지만 사랑스럽다. 그래서 임다혜 양은 행복하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대학 진학을 접었다.


  ▲ 보기만 해도 행복해진다는 다혜양의 엄마·아빠 사진

올해 스무 살이 된 임다혜 양. 현재 운암고등학교 3학년 4반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인 운암고에서 2학년 때 위탁학교 이야기를 듣게 됐다. 임 양은 망설이지 않고 이 학교를 택했다. 고3이 됐고 그녀는 위탁학교 내의 기숙사로 향했다. 그곳에서 1년 간 직업 교육을 받은 후 취업에 나서게 된다.

  ▲ 천안 병천의 기숙사 학교

 

기숙사에는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많았다. 교육에서부터 숙식까지 모든 것이 무료였다. 그러나 그런 만큼 감수해야 할 부분도 있었다. 지난 여름 급식에서 벌레가 나와 신고하는등의 일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그곳에서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들렀다. 기숙사는 천안 병천이고고 집은 오산이다. 주말마다 집에 와 그리운 가족과의 만남을 가졌다. 임 양의 일주일 용돈은 3만원. 필요한 물건을 사기에도 빠듯하지만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았다. 그리고 방학 때는 집에서 일을 도왔다. 그녀는 든든한 맏딸이다.


 

 ▲ 임다혜 양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이제 그녀는 어엿한 직장인이다. 한 달도 채 안 된 그녀는 일이 손에 익지 않아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직장 동료들이 모두 좋아 아직 크게 힘든 일은 없다고.

 

임 양의 아버지는 치아가 안 좋다. 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하다. 작년 일어난 가스폭발 사고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머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병간호에 열중했다. 임 양도 당시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부모님에 대한 소중함과 사랑을 느꼈다. 지금은 퇴원해 가끔 통원치료를 하는 정도지만 임 양은 그래도 마음이 쓰인다.

 

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3년 전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통증은 남았다. 수술 후 잠시 호전됐던 병세는 이제 도무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의 증상은 무릎 연골이 닳아 뼈끼리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머니의 다리 한 쪽은 팔뚝 만큼 얇다. 그 다리를 이끌고 식구들을 위해 공장에서 일하고 퇴근해서는 살림을 하는 어머니를 보면 임 양은 가슴이 에인다. 빨리 자리를 잡아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대견한 그녀다.


 

  ▲ 동생과 어릴 적 모습

 

막내 동생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된다. 그래도 아직 큰 누나인 임 양과 치고 박고 싸우는 육탄전을 불사한다. 열세 살짜리를 때릴 데가 어디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주 많다"고 답한다. 그렇게 장난을 칠 때면 그녀의 부모님이 흐뭇하게 바라본다고 한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다.

 

첫째 동생은 18살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남동생과는 눈빛으로 통하는 사이다. 서로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속뜻을 알아차리고 정을 나눈다. 그들은 가족이다.

 

임 양은 손재주가 좋다. 손글씨나 그림은 물론 만들기에도 재능이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그녀가 그린 그림은 늘 학급 뒤편 게시판에 붙었다. 상도 여러 번 탔다. 만들기도 한 번만 과정을 보면 똑같이 할 수 있다. 만능 재주꾼이다.

  
 

음악을 즐겨듣는 그녀다. 그래서 그녀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음악 감상이다. 클래식이나 발라드·팝·댄스까지 가리는 음악이 없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음악을 들으며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금 그녀의 일에 몰두한다. 체육 과목을 좋아했던 터라 농구도 자질이 있다고 한다.

 

그녀의 좌우명은 '결정한 일에 몰두하자'이다. 결정 내리기 전까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해 노력한다. 그것이 스무 살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막내 동생이 11살 되던 해에 이가 편치 않은 아버지를 위해 치과 의사가 되겠다고 말했단다. 그녀는 그때부터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동생이 저학년 때는 동생을 울린 친구를 찾아가 혼내주는 열혈 누나이기도 했다.

  

그녀가 위탁 학교를 선택했을 때 그녀의 부모님은 이를 극구 만류했다. "우리가 너의 교육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할 테니 너는 공부만 생각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듣지 않았다. 그녀의 공부를 위해 무거워질 그들의 어깨를 알았기에. 취업을 택한 것에 단 1%의 후회도 없다. 그녀는 그렇게 당당하고 다부지다.

 

친구들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다. "괜찮을 것 같다"며 응원을 보냈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 그녀의 결단력을 믿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무한 믿음을 선보였다.

 

그녀는 2011년 12월 19일에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250여 명의 학우들과 함께 했던 기숙사를 떠나 사회로 나온 것이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아홉 시간을 그녀는 일한다. 그녀의 땀방울에는 어머니의 헌신과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 그리고 두 동생들의 싱그러운 웃음이 들어있다. 그래서 그녀는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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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1-18 16: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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