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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세상 모든 것에는 각기 이름이 있고 그것을 새기는 사람도 있다. 그가 바로 전재상(56) 사장이다. 명찰, 배지, 각종 기(旗) 등 그의 손끝에서 그들은 이름의 형체를 얻는다. 금실, 은실 혹은 플라스틱 명찰에 검은 잉크로 새긴 이름들이 전재상 씨의 손에서 탄생한다.

 

  ▲ 전재상 만물 마크사 사장

오산 중앙 재래시장 버스 정류장 뒤 편. 만물 마크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 자리에서 29년 째다. 근 30년을 한 장소에서 지켜온 저력은 "별거 없이 그냥 한 우물 파기"란다. IMF 위기 이후 경기는 안 좋아졌지만 그를 믿고 찾아주는 단골 손님이 있어 떠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 전재상 씨의 작품들 - 상패
 

전재상 씨가 마크 일을 배우기 시작한 건 40년 전이다. 당시 매형이 하던 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했던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됐다. 용돈 벌이로 했던 일이 필생의 업(業)이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범 삼아 보여주는 그의 손놀림이 마치 한 마리의 승천하는 용을 보는 냥 예사롭지 않다. 간격이며 구상은 이미 머릿속에 있고 내뿜어지는 것은 오로지 40년 장인의 기품이다.

  ▲ 전재상 씨의 작품들

 

그의 가게는 넓지 않다. 대여섯 평 남짓한 공간에 그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명패, 마크, 스티커 등 온갖 이름이 있는 것은 모두 모인 듯하다. 군복에서부터 합기도 기(旗), 용, 호랑이, 독수리부터 학생들의 명찰까지 다양한 구경거리는 덤이다. 어떤 인테리어보다도 훌륭한 구성이다.

 

  ▲ 전재상 씨가 작업한 명찰들

 

지금은 마크사가 현저히 줄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성행이었다. 그러나 경제 위기 이후 지금까지 쭉 하락세를 타고 있다. 또 몇 사람의 몫을 해주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일손이 많이 줄었다. 도장을 파는 일도 명찰에 이름을 새기는 일도 이제는 거의 기계의 몫이다. 현재 오산에 있는  마크사는 전 사장의 가게를 포함해 2곳 뿐이다. 인근 수원에도 단 세 곳만이 마크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불황을 실감할 만하다.

 

  ▲ 작업하는 모습

 

그런 와중에도 정든 곳을 떠나는 것이 싫어 자리를 지켰다. 얼마 전 방송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이래저래 신경쓰는 것이 싫어 정중히 거절했지만 그로 보아 이미 전재상 씨의 유명세는 알만 하지 않은가.

 

 ▲ 고객과 상담하는 전재상 사장

 

김순기(49) 화성동부모범운전자지회 총무는 이곳 단골이다. 그는 "(전재상 사장이) 친절하고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아 이 곳을 찾는다"고 말한다. 손님을 소 닭 보듯 하는 곳과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라고 입에 침이 마른다.

 

전재상 씨는 중앙재래시장으로 오기 전 수원비행장에서 일했다. 그 곳에 큰집이 일을 하고 있어 요즘도 가끔 지원을 나간다. 갈 때마다 옛 생각에 잠기곤 한단다.

 

  ▲ 조종사 명찰

 

40년 쯤 전에 그의 가게에 자주 들르던 조종사가 있었다. 젊은 조종사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전화가 흔치 않았던 시절 그의 가게에 와 연인과의 통화를 하곤 했다. 그러다 비행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결혼 일주일 전이었다. 그때 조종사의 죽음 이후 한동안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한 떨기 젊은 영혼이 바다 위에 스러져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사그러지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고.

 

  

 

전 사장은 아는 조종사가 많다. 비행장에서 일했던 이력 때문일 것이다. 가게를 하기 전 한 번은 일본 국방부 장관의 계급장 마크를 해준 적도 있다고 한다. 보통 조종사들의 명찰을 많이 해준다. 알고 있는가? 조종사의 마크에는 이름과 혈액형이 함께 새겨진다는 것을. 긴급 상황 시를 대비해서란다. 날개가 새겨진 마크를 달고 하늘을 조종하는 기분은 어떠했을까? 또 그들의 서릿한 긴장과 설렘을 늘 지켜보던 전 사장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당최 그는 자랑을 하는 성질이 아니다. 보통은 인터뷰 시 당신의 업적이나 성과를 늘어놓게 마련인데 전 사장은 도통 그게 없다. "장사가 안 될 때는 힘들었다. 요즘은 워낙 경기가 안 좋아 아내가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한다. 마크를 새겼을 때 뿌듯했다. 남한테 해코지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다. 평생 이 일을 할 거다"처럼 한 마디씩의 답변만을 해주는 전재상 씨. 그러나 그가 기자에게 기념으로 내어준 조종사 이름표를 새길 때 기자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운. 그에게서 느껴지는 엄청난 기운이 감돌았다. '전문가의 기운'만으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달인보다 장인보다 더 거대한 경지의 프로 의식. 실을 잡는 그의 손이 빛났다.

 

  ▲ 만물 마크사

 

인터뷰를 마치고 오는 길 동행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는 손님의 방문 일자를 모두 기억하고 있단다. 거기에서 전재상 씨의 실마리가 풀렸다. 전 씨는 살갑지도 않고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지도 않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이다. 그저 손님의 말에 가볍게 응수를 해주지만 그 한 마디 속에 커다란 정이 들어있는 느낌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손끝에서 세상 모든 이름들은 제 나름의 색체와 모양을 얻는다. 만물 마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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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1-02 17: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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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4 개)
  • 전만진2012-01-05 09:56:22

    기나긴 긴세월 한길만 고집하더니, 살다보니 인터넷에서 까지
    만날줄 몰랐군,ㅋ 역시 달인이며 장인정신에 감동 받았으며
    볼수록 내마음 뿌듯합니다. 힘든 경제에서도 생명 다할때까지
    건강하고 끝까지 명예로운 자리를 지켜주세요~ (강릉에서)

  • 버스인2012-01-04 00:15:26

    나 버스타고 지나가다가 본곳이네 ㅎㅎㅎ

  • 오산인터넷뉴스2012-01-03 2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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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산인2012-01-03 09:46:53

    마크사 사장님 .. 당신이 바로 달인 이십니다...한번 뵙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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